“배고파….”

“곧 나올 거예요.”

금실로 수를 놓은 기모노가 구겨졌다. 쿠레하는 식사 예절을 모르는 걸인처럼 식탁에 엎드려 탄식했다. 그동안 사라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찻주전자를 들었다. 비취색 도자기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져 잔을 채웠다. 미리 담았던 말차가루가 풀리며 수색이 푸르게 변했다.

“여기 뭐가 맛있대…?”

“우선 해산물이요.”

“오마카세는 양이 적어서 별론데.”

“원래 조금 드시잖아요. 충분히 배부를걸요.”

“넌 괜찮고.”

찻잔을 쥐려 자세를 고쳐앉자 소매 자락이 둥글게 떨어져 내렸다. 한 손바닥으로 찻잔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부드럽게 들어올리는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가이세키 요리를 대접하는 고급 요리점은 정장과 기모노, 거기 준하는 단정한 의상으로 드레스 코드를 지정했다. 옷장에서 흘러넘쳐 벽과 바닥까지 쏟아진 쿠레하의 옷들은 짧거나 얇기만 해서 하는 수 없이 엔쇼의 힘을 빌렸다. 사라의 정장도 평소 출근할 때 입던 종류보다 고급품이었다. 상대의 감상은 평소보다 검다는 한 마디가 전부였지만. 본인이 애용하는 목걸이나 신발, 자켓 브랜드도 잊어버리기 일쑤니 예상 그대로의 결과였다.

후타츠메에 오르면서부터 무대에 붉은 단풍을 피워냈으니 봄에도 가을 무늬를 걸치고 다니는 사람은 도라쿠테이 엔쇼뿐이다. 차에서 내려 가게의 별실 문턱을 넘을 때까지 두 눈을 가리던 선글라스는 렌즈가 크고 무거워 걷는 동안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사라가 선글라스를 고쳐 씌워주는 동안 긴 속눈썹이 위아래로 오가며 생각에 잠겼다. 이럴 때면 말을 걸어도 몇 박자 늦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마저도 물음과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대답과 멀었다.

“이런 음식 잘 드시잖아요.”

“…….”

지금도 쿠레하는 창 밖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내다보며 입만 벙긋거렸다. 돌아간 고개로 차만 몇 모금 머금다 천천히 입술이 움직였다.

“저기 봐.”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과연 흰 나비가 물살을 따라 날개짓했다. 얇은 피막이 바닷바람에도 찢기지 않고 거품에 닿을락말락 물과 허공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곧 문이 열리며 점원이 첫 번째 음식을 나란히 차렸다.

“유자 오이 초절임입니다. 식초에 유자즙을 섞어 오이를 무쳤습니다. 곁들인 유자 껍데기는 드셔도 무방하니 식감을 즐겨 보세요.”

우선 입맛을 돋구는 전채. 아삭거리는 오이에 유자의 향을 입히자 특유의 향이 부드러이 퍼졌다. 나비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던 쿠레하는 음식에 집중하느라 또 본론을 잊어버린 듯했다. 요령 좋은 점원은 주전자에 새로 물을 채워준 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사라의 입맛에는 솔직히 셨다.

“이거 맛있네. 집에서 매일 샐러드로  먹었으면.”

“질릴 텐데요.”

“그러게. 아… 그래서 조금씩 주는 건가?”

“아쉬운 순간 다음 요리를 내오죠. 그래도 전채는 금방 나올 텐데.”

“아직은 채소였지? 생선, 기대된다.”

도쿄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나와 쇼난까지 이어지는 해안 도로를 타고 후지산이 가까워질 때까지 달려 도착한 식당. 한 면으로는 태평양이, 반대쪽 면으로는 만년설의 정경이 펼쳐져 삼백육십오일 만석이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예약은 전화나 기존 손님의 추천을 통해 이루어졌다. 쿠레하는 보기보다 입맛이 고급스러웠으나 까다로운 건 또 아니었다. 소고기를 구워주든 회전초밥집에 앉히든 한 그릇에 300엔 하는 심야우동집에 데려가든 웬만한 음식은 전부 입 속에 밀어넣었다. 전에 물어보니까 남이 사는 음식에 불평하면 안 된다더라. 사라가 여러 연줄로 소개장을 구해 자리를 마련한 목적에는 탐문과 탐색도 포함되었다.

두 번째는 매실 강낭콩 무침. 매실즙으로 강낭콩을 무쳤으며 초절임과는 다르게 엿당을 듬뿍 넣어 달달했다. 단독으로 먹기엔 혀에 물렸고 말차와 번갈아 먹어야 가까스로 단 맛이 중화되었다. 쿠레하는 수저를 물고 중얼거리다 몇 입 들지 않고 그릇을 밀었다.

“몇 번을 먹어도 매실은 입에 맞지 않아.”

“생선까지는 더 걸려요. 그 사이에도 음식이 둘인데.”

“기다림도 싫어.”

“달리 싫은 것이 있나요.”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것….”  

다시 탁자에 엎드리기엔 펼쳐진 그릇과 반찬이 많았다. 대신 턱을 괸 그는 오랜만에 사라를 올려다 보았다.

“나비는 사람의 영혼이래.”

앞선 화제가 갑자기 돌아오는 것도 특유의 화법. 그러니 당장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도 사라는 인내심 있게 기다려 왔다. 트집 잡히면 바로 의욕이 꺾이는 한량은 오냐오냐 부드럽게 달래야 한 반짝 다가올까 말까 했다. 지금은 자세를 바로 해 관객처럼 굴면 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듯했다. 법규와 규율을 무시하는 그가 드물게 지키는 라쿠고가로서의 도덕론. 극장 바깥에서도 설화를 들려줄 때만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목소리를 단정하게 가다듬었다.

“나비와 벌은 페로몬을 따라 움직이지만 환경이 변하면 냄새를 분간하기 어려워져. 바다는 특히나 소금기가 강하니까. 필경 길을 잃고 여기까지 흘러왔겠지.”

“나, 여기 와 본 적 있어… 그때도 같은 나비가 날개를 펼쳤으니까….”

읊는 내용은 대본에 적혀 있지 않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기성 라쿠고조차 아니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구전의 문학은 화자의 경험이나 현재의 시대상에 맞춰 골자부터 낱말까지 탈바꿈하며 이어졌다. 엔쇼의 라쿠고는 기존의 맥락을 지키는 선에서 자유자재로 글감을 잘라내거나 덧붙여 확장된 세계관으로 정평이 났다. 친구의 친구나 술자리에서 들었다는 말머리로 시작된 언어는 관객과 같은 시간 속에 생동했다.

사라는 쿠레하가 각각의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까지 알았다. 개중에서는 자신이 그에게 전했던 말이 포함되었으므로. 저작권비를 지불했어야 할 라쿠고가는 사라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밤이면 콘크리트 건물과 철제 기둥 사이에서 나타나 역으로 밥을 사 달라며 졸랐다. 좋은 아침, 좋은 점심, 좋은 밤이 전부 ‘배고파.’다. 그러면서 식사량은 늘 소박해서 좋아한다던 유자 오이 초절임도, 기다리던 고기 요리도 절반은 그릇에 남았다.

계육 비린내를 된장으로 잡아낸 닭가슴살 된장 조림은 퍽퍽하던 살을 걸쭉하게 녹여 먹기 쉽게 만들었다. 혀로 뭉개면 결대로 살이 무너져내렸다. 앞서 차렸던 매실 무침의 단 맛과 중복을 경계했는지 된장 양념은 짭조름하고 매콤했다. 거의 비슷하게 나온 장국은 조림의 묵직한 식감을 타파하기 위해 죽순을 넣어 맑게 끓였다. 미역 위로 떠오르는 껍질 벗긴 죽순과 흰 새우살은 비슷한 색이었다. 모두 싱겁고 슴슴한 재료다. 가이세키의 국물은 하나의 요리라기보단 본식을 올리기 전 입을 헹구는 목적이으므로 사시미와 구이가 올라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떴다. 그 새를 못 참고 쿠레하는 다시 평소의 나른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꼿꼿했던 허리가 구부정해졌고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던 눈동자는 그늘 속에서 빛을 빼앗겼다.

사라가 고기 조각에 양념을 묻혀 몇 점 밀어넣는 동안 쿠레하는 다시 식사는 먹는둥 마는둥하며 젓가락으로 새우나 미역을 헤집었다. 힘을 잘못 조절했는지 대접이 기울어지며 국과 알맹이가 무릎에 쏟아졌다. 젖은 부분이 짙게 물들어간다.

“아….”

“이런. 뜨겁진 않아요?”

“…조금?”

“수건 받아올게요.”

휴지로 옷감을 지그시 누르게 한 뒤 사라는 복도로 나섰다. 고관의 회동 장소로 손꼽히는 각 객실은 숨쉬는 소리조차 가로막혀 적막했다. 방문마다 그와 비슷한 착장의 경호원들이 두 명씩 서 입구를 서는 모습은 식당에서 만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식당 점원들도 유난한 안보에 적응했는지 금방 입을 벌리지 않았다.

“고객의 프라이버시는 알려드리기 어렵습니다.”

“가벼운 내기인데.”

“그럼 본인께서 찾아 오신다면.”

동행인과 내기했다, 그 사람이 예전에 이 식당에 왔는지 아닌지 헷갈려해서. 나는 왔다에 걸었고 상대방은 아니다에 걸었다. 가벼운 놀이로 포장해도 엄숙한 표정은 눈썹 한 올마저 한결 같았다. 미지근한 물수건을 받아 돌아가는 길 사라는 자켓 안주머니에 넣었던 사진을 꺼냈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도 전에 현상했을 사진은 세피아색으로 번져 있었다.

그러니 걸친 기모노가 지금처럼 단풍 빛깔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무신경한 표정만은 방 안에서 그를 기다리던 모습과 판에 박은 듯이 닮았다. 완전히 바래 실루엣조차 겨우 구분해낸 인영이 셋. 추측대로라면 가족 사진이다. 배경의 현판이 상호와 일치하니 옛 촬영지는 두 사람이 건너온 문 앞이었다. 들어오던 길 문기둥을 유심히 살폈던 쿠레하가 추억을 떠올렸는지 기둥을 기어오르던 개미를 세고 있었는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장지문은 사라의 손에 닿기도 전에 옆으로 밀렸다. 다 먹은 그릇을 쟁반에 쌓아올린 종업원이 고개를 숙이며 길목에서 비켜섰다. 봄의 제철 생선은 보리숭어와 참돔. 윗부분이 붉은 보리숭어회가 꽃처럼 둥글게 펼쳐져 있었다. 반으로 갈라 단면을 드러낸 참돔은 끄트머리를 잡으면 등뼈가 고스란히 분리되었다. 머리를 잘라내던 쿠레하가 사라를 돌아보았다.

“그 사이 옷은 다 말랐어.”

“부엌이 바빠서 늦었네요.”

“됐어… 한 벌 더 있으니 다음 공연은 그걸 입지.”

“기모노는 좀 아끼는 줄 알았네요.”

“새로 맞추려면 계속 서서 기장을 맞춰야 해서. 길들이기도 번거로워…”

기모노는 옷감 한 통을 접고 꿰매어 짓기에 펼치면 직사각형이 되었다. 쿠레하의 옷은 평범한 후리소데보다 소매 폭을 넓혀 안에 부채나 손수건을 넣기 용이하도록 개조했다. 천으로 다리를 감싸면 보폭이 좁아지는 게 싫어 기모노에 쓰이는 보통의 천보다 얇고 가벼운 재질을 골랐던 것도 특징적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미니 원피스와 도라쿠테이와 대대로 거래한 명가의 기모노 중 무엇이 더 잘 어울리는지를 고른다면, 옷과 함께 태도를 바꾸니 비교가 어려웠다. 엔쇼의 옷을 입고 쿠레하의 표정을 짓는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었다.

“아까 직원이 사과했어. 원래 다음 메뉴는 게살 스프인데 재료가 상해서 된장국으로 바꾼다고.”

“앞과 재료가 겹치긴 한데, 상관 없어요.”

“나도. 온종일 고급 요리를 먹었더니 미소장국이 그리워서.”

“다른 테이블은 어떠려나.”

미리 세제로 적신 수건을 쥐고 다가가니 아직도 티슈로 젖은 부분을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마가 부딪힐 만큼 머리가 가까워지자 허벅지에 올려진 손이 바닥으로 움직였다. 떨군 손가락 끝은 다다미를 스쳤다. 얼룩을 지우는 동안 희미한 세제 냄새에 코가 둔해져 갔다. 솥밥은 먼저 가져다 주지 않고 식사와 담소를 충분히 마친 손님이 종을 울리면 그때부터 준비를 시작한단다. 사라는 얼굴을 가린 채 비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공간의 붕 뜬 어린아이를 상상했다. 지금처럼 멍한 얼굴에, 이런 표정으로는 예측하기 힘든 욕망을 아가리 밑에 품고.

“저번에 왔을 땐 바닷가에서 놀았어. 내가 모르는 이야기 따위 지루해서….”

“나비를 따라 갔겠네요.”

“인어를 보았지. 여기 절벽에서 흐린 날이면 만날 수 있대. 그날도 하필 폭풍우가 쳤거든.”

사진 속 우비가 상상에 현실감을 덧칠했다.

“인어 고기를 먹으면 불사가 된대. 그래서 나, 인어와 입 맞출 때 입술을 물어 피를 냈어.”

“효과를 보았나요?”

“설마. 그 후로도 계속 자랐잖아. 이제 시들어갈 일만 남았지….”

“오래 건강해야죠. 조금 더 드시지 그래요? 찾던 요리잖아요.”

“필요한 만큼 먹었어.”

줄어든 회는 다섯 점. 발라낸 살은 전체의 삼분의 일.

“식사는 귀찮아. 어떻게 먹든 소화하면 다 똑같아지는데도….”

“분위기 즐기는 거요. 가끔은 좋잖아요.”

“흐음….”

상대방이 대뜸 자리에서 일어난 탓에 물수건은 그대로 중력을 따라 바닥에 떨어졌다.

“그럼 나가서 산책하자.”

“오늘은 해가 떴으니 인어는 가라앉았겠지만요.”

“꽃… 잔뜩 피었는걸.”

“솥밥은 괜찮은가요?”

“기모노는 답답해. 더 못 들어간다고….”

벗겨줘. 이제 양팔을 앞으로 내민다. 라쿠고가의 가장 비싼 옷은 혼자 입기도 벗기도 불편했다. 오비를 감싼 매듭을 풀고 매듭 바로 밑의 허리띠 세 겹을 풀어 가장 안쪽에서 형태를 고정하던 옷핀을 제거했다. 가장 겉에 한 벌, 안쪽에 색이 옅은 한 벌, 속옷을 겸하는 희고 얇은 한 벌. 밑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블랙 미니드레스를 받쳐 입었다.

“처음부터 갈아입을 생각이었나 봐요.”

“당연하지… 너나 나나 모처럼의 휴가잖아.”

바다 위 나비는 어느덧 파도 속에 작은 몸을 감췄다.

대신 꽃잎이 바람을 타고 비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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