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지의 마음은 말 마, 마실 음을 쓴다. 이름의 유래는 여기가 한양에서부터 통영까지 이르는 통영별로에 포함된단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물자와 사람을 실은 수레가 물가에 멈춰 쉬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주막촌이 생겨났다. 점차 늘어난 정착민들이 일대의 땅을 갈아 전답을 가꾸고 집을 지었다. 마을은 번성했지만 쌓았던 둑이 터지며 수장되고 말았다. 그들에게 살길을 터주었던 물은 베푼 것 이상의 생명을 거두었다. 그게 아니라면 마침내 은혜의 제값을 받아낸 건지도 모른다. 터전을 잃고 헤매는 사람의 마음 따윈 모른 채, 물은 지금도 옛 흔적 위를 고고히 흐른다.
여행은 이창이 제안했다. 최호찬은 또래 이상의 아저씨 취향이었고, 낚시와 등산을 좋아했다. 산이야 당장 집 뒤에도 있으니 매일 아침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는 걸로 충분해 보였다. 낚시는 그것보다 돈과 시간이 든다. 그러니 최호찬에게 뭔가 해주기 위한 수고를 들이려면 이쪽을 즐기게 해주는 게 좋다.
“나야 좋긴 한데 진짜 웬일이야. 낚시를 다 가자고 하고.” 짐을 싸던 최호찬이 무심코 말을 흘렸다. 이창은 그의 비효율적인 적재 방식에 고나리질 하고 싶다는 충동을 참고 있었다. 잠시간의 뜸을 들인 후에 이창이 입을 열었다. “효도 관광.” “웃기고 있네. 어버이날 지났다.” “그럼 생일 기념.” “반년 뒤라고…….” “그때 뭔 일 생길지도 모르잖아.”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불길하지. ……아니, 근데. 야. 그냥 나랑 놀고 싶었다고 하면 되잖아.” 성가시단 듯이 최호찬은 말했지만, 이창은 그보다 더 성가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창은 최호찬의 배낭에 손을 넣어 거슬리던 양말들을 하나씩 빼냈다. “당연히 같이 가고 싶어서 말한 거지 웬일일 것까지 있냐고.”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라고.” “내가 가자고 할 때부터 그런 줄 알라고. 나도 좋아서 가자는데 말이 많네.”
그 말의 의미를 받아들이기 전에 최호찬은 눈앞의 현상에 먼저 항의하기로 했다. “아, 왜 다 빼는데.” “형은 기본이 안 되어있어. 누가 옷을 이렇게 넣냐고.” “야이, 이리내.”
운전은 드물게도 이창이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효도 관광인 걸로 치고 컨셉에 충실해지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 다 속으로는 ‘이딴 건 효도가 아니고 효도 주고(받고) 싶지도 않아’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출발할 때가 되자 좋아서 가는 여행이라는 얘길 하기엔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최호찬이 내비게이션을 만지기 시작했다. 이창은 천리안이라도 가진 것처럼 길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호찬이 자신보다 이걸 신경 쓰는 게 괜찮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다 아는 길이란 말은 삼켰다.
고속도로로 빠지자 풍경이 바뀌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는 육아의 고충이 담긴 사연을 읊어댔다. 두 사람 다 관심 있어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멍하니 논밭을 바라보던 최호찬이 불쑥 말했다. “마음지라니 따뜻하게 들리네.” 그들의 목적지였다. 순조롭게 이어가기 좋은 화제였지만 이창은 앞서가는 버건디색 소나타의 지저분한 운전 매너에 조금 짜증이 난 상태였다. “어감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어디가?” “음지라잖아.” “그렇게 끊어 읽냐. 넌 애가 왜 이렇게 어두워.” “뭐래. 그 마음도 아니거든.” “그러셔.” 다시 의식을 흘려보내려던 최호찬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눈이 커졌다. “음지래서 생각났다. 거기 심령 스팟 아냐?” “아……맞아. 서프라이즈 하려고 했는데 망했네.” 그렇게 말하는 이창의 얼굴은 평소만큼 무표정했다.
저게 농담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한 채로 최호찬이 눈썹을 모았다. “……혹시 우리 일하러 가는 거야?” “아니야. 그냥 형이 좋아할 거 같아서.” “난 진짜 네가 이해가 안 된다.” 그 말은 이창의 관심을 저 미친놈의 소나타에서 최호찬으로 곧장 되돌려놓았다.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 “그야 흥미롭긴 하지? 근데 보통은? 낚시랑 귀신을 함께 즐기고 싶지는 않지?” “…….” “싫단 게 아니라, 야. 뭐냐. 앞차 저거 미쳤네.” 최호찬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은 운전자에게 이창은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한결 느긋해진 얼굴로 핸들을 부드럽게 돌렸다. “냅둬. 어차피 더 볼 일도 없다.” 차가 오른쪽 노선으로 빠졌다.
버드나무가 드리운 진입로는 차가 지나다니는 걸 염두에 둔 상태가 아니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최호찬이 벌겋게 녹슨 표지판을 찍었다. “이창, 이거 봐.” “봤어.” “안 보고 있잖아.” “전에 봤어.” “답사라도 했어?” 그런 기특하고 계획적인 일을? 최호찬이 묘한 시선을 보냈다. “그랬지.” 한때 들어와 살 만한 곳인지 살펴봤단 얘기는 묻지 않는 이상 할 필요가 없었다. 탁 트인 뜰로 들어서자 주차된 차들이 몇 대 보였다. 그것들 사이의 빈 자리로 파고들며 이창이 말했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가서 얘기하고 놀아.” “애 맡겨 놓냐고.” 그렇게 어이없어 해놓고도, 물가로 내려간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최호찬은 세 명의 낚시꾼들과 친해졌다.
익지 않아 푸릇한 부들이 바람을 따라 산들거렸다. 최호찬이 실컷 떠들어 붉어진 얼굴로 이창에게 돌아왔다. 난생처음 보는 아저씨들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아낸 게 분명했다. 접이식 의자에 앉아 조금 졸던 이창이 최호찬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찌는 흔들리지조차 않았다. “지금은 산란기라서 대부분 놓아준다더라. 그리고 밤이 더 잘 잡힌대.” “놓아주기는……아까 어떤 아저씨가 내 팔뚝만 한 고기 아이스박스에 넣는 거 봤는데.” 이창은 입을 막고 하품했다. 해가 비치는 자리인데도 공기가 축축하고 무거웠다. “뭐, 보호종도 아니니까.” 최호찬이 그의 머리를 누르며 의자에 앉았다.
넓게 펼쳐진 수면이 차르르 떨며 빛을 내고 있었다. 조금만 머리를 들면 곧바로 태양이 눈에 들 정도였지만, 그도 이창과 비슷한 걸 느끼고 있었다. “이제 여름인데 왜 이렇게 춥냐.” “몰라. 누가 죽기라도 했나 보지.” “전국 팔도에 사람 안 죽은 데가 있긴 한가…….” 최호찬은 이창만큼이나 심드렁히 말했다. 차에서 마음지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봤지만 별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그 내력을 바로 떠올리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2000년대에 변사체 한 구가 마음지에 떠내려왔다. 조사는 지지부진했고 피해자의 신원도 특정되지 않아서, 인근 주민들이 연고 없는 무덤을 하나 만들고 작은 굿을 했다. 그때도 마음지는 낚시꾼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전해지는 명소였는데, 수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이곳을 방문했던 낚시꾼이 허탕을 치게 된 사연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 정보값 없는 풍경 사진과 불완전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가 있었다. 하지만 진짜 시체가 나왔다는 건 귀신을 봤다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귀신은 재밌지만, 살인사건은 아무래도 재밌지가 않은 법이고. 실제 미제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범죄영화가 흥행하던 시기기도 했다. 마음지는 빠르게 잊혀졌다.
“여기서 나왔다던 시체 말인데.” 이창이 무시하기 힘든 말로 운을 뗐다. “정수리에 말뚝이 박혀 있었다더라.” 그건 인터넷에 떠도는 그 어떤 이야기와도 비슷하게 들리지 않았다. 최호찬이 낚싯대를 놓고 옆을 돌아보았다. “그게 흉기래?” “아니. 숨 막혀 죽었을걸.” “넌 왜 이렇게 잘 알아.” “답사했다고 했잖아.” “뭔가 얘기할수록 별로다…….” 무언가 말하려던 이창이 입을 다물었다. 때맞춰 텐트에 두고 온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찝찝해하는 최호찬만 자리에 남았다.
“…….”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시선을 끌 때라는 듯, 찌가 옆으로 기우뚱 누웠다가, 물속으로 쭉 끌려 내려갔다. “어.” 최호찬은 곧장 낚싯대에 손을 댔다. 먼 산등성에서부터 천천히 밀려오던 구름이 해를 가렸다. 머리 위의 변화를 신경 쓸 새도 없이 최호찬은 손끝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에 빠져들었다. 릴을 감자 수면 위로 검고 둥근 형체가 쑥 나타났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게 다시 한번 떠올랐을 때, 릴을 감던 손이 멈췄다.
“걸렸어? 빨리 안 당기고 뭐해.” 돌아온 이창이 그의 뒤에 섰다. 최호찬은 전에 없던 침착한 얼굴로 감던 릴을 역방향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진짜 뭐하냐고.” “아니……꺼내면 안 될 거 같길래.”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중얼댄 최호찬이 정면을 턱짓했다. 물에 둥둥 뜬 검은 머리카락이 물풀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창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어떻게 해. 풀어주면 돼?” “풀어주긴 뭘 풀어줘. 일단 계속 당겨봐.” “어쩌게.” “어쩌긴.” 바지를 걷어 올린 이창이 무구를 쥐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야…….” “괜찮아. 더 안 들어가니까.”
고작 종아리 반까지 잠기는 높이였다. 고인 물에선 파도가 치지도 않는다. 그를 거꾸러트려 빠져 죽게 만들 위험 같은 건 이곳에 없었다. “가만 보면 지가 제일 조심성이 없어.” “없는 게 아니라,” 이창이 말을 멈추고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만큼 어리둥절해하는 최호찬의 얼굴이 보였다. 곧 그의 두 눈이 크게 뜨이고, 급히 일으킨 몸 밑에서 의자가 나뒹굴었다. 낚싯대나 제대로 잡고 있으라니까. 그게 물 밖에서 이창이 할 수 있던 마지막 생각이었다.
순식간에 허리까지 높아진 물이 사람을 삼키고, 낚싯대를 쓸어간다. 해가 보이지 않는 흐리멍덩한 하늘 밑에서 머리카락은 문어발 같은 부피감을 갖고 자라났다. 한발 빠르게 뒤로 물러난 최호찬은 자신이 이곳에 혼자 남았다는 걸 깨달았다. 낚시꾼들은 보이지 않았다. 남긴 짐도 없이 깨끗한 자리로 차고 눅눅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최호찬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바람을 이기고 일어난 푸른 불꽃이 크게 일렁였다.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그 불을 물가에 가져가자, 쌔애액 내지르는 듯한 숨소리가 나며 무언가 물러가는 기색이 느껴졌다.
“답사했다며…….” 부글거리는 속을 누른 채 최호찬은 물에 발을 담갔다. 퐁, 퍼져나가는 물둘레 소리와 반대편에서 밀려온 파동이 맞닿은 자리에서 젖은 머리통이 솟아났다. “아……놀라라.” 수귀 같은 꼴로 이창이 중얼거렸다. 확 풀어졌던 최호찬의 표정이 곧바로 굳었다. “누가 더 놀랐을 거 같아.” “당연히 나지. 거기 멀쩡히 서 있는 형이겠어?” “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나올 수 있어?” 이창이 고개만 끄덕였다. “……대답은 해도 돼.” “밑에서 뭐가 잡고 있긴 한데…….” 이창이 무구를 아래로 꾹 눌렀다. 끓어서 부글거리는 물 위로 기포가 솟아올랐다. “됐다. 하나 떨어졌네.” “…….”
최호찬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몇 발짝 걸어 들어갔다. 물이 넘실거리며 최호찬의 몸에 부딪쳐왔다. 점차 세를 불려 나간 파문이 일어날 리 없는 파도가 되어 허공에 물을 튀기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철썩, 최호찬이 피워올렸던 불꽃이 꺼졌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튀어 오른 손들이 그의 팔에 매달렸다. 첨벙거리는 소음이 귓전을 때리며 축축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 오세요, 이곳에 와주세요. 공기 반 물 반을 삼킨 입안에서 제 것이 아닌 목소리가 나온 것 같았다.
이곳에서 우리가 되어주세요. 완전히 잠긴 머리 위로 다시 해가 나며 차가운 빛이 환하게 내리쬐었다. 최호찬은 물 밖에 선 사람들을 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얼굴들에는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가까워진 그들이 머리를 세게 누르고, 배와 팔다리를 깔고 앉았다. 그 자리에 못 박으려는 듯, 자신들처럼 영영 세워두려는 것처럼……멀리서 쩌렁쩌렁한 방울 소리가 울렸다. 그에 묻힌 물 끓는 소리는 제 코와 입에서 새어 나오고 터지는 기포만큼이나 희미하게 들렸다. 그때 무언가가 다시 팔을 세차게 당겼다. 최호찬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굴처럼 깊고 조용한 어둠이 그곳에 있었다. 형체가 없으면서도 만져지고, 손이 얽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잡아당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든 순간, 어디서 솟아났는지 알 수 없는 힘이 최호찬을 움직였다. 어쨌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대로 죽어도 둘, 살아도 둘이다.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어느 쪽에 몸을 던져야 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 정신이 들었을 때, 최호찬은 이창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이창이 붙잡은 반대쪽 팔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움직이려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신경을 타고 올라 악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좋은 일이라곤 자신의 팔이 제 몸에 제대로 붙어있단 것뿐이다. 잠시 후 이창도 눈을 떴다. 잠에서 깬 듯 꿈뻑대며 순하게 가장하고 있던 눈이 곧바로 매서워졌다. “왜 이러고 누워있어.” “몰라……아, 아야! 가만히 좀 있어.” “…….” 지친 건지 기가 죽은 건지 알 수 없는 태도로 이창이 조용해졌다.
바닥에 납작하게 눌어붙은 두 사람이 햇볕 아래서 한참 잠자코 굳어갔다. “……그리고 내 팔도 좀 놔.”​ “내 목이나 풀어주고 말해.” 그러면서도 이창은 순순히 손에서 힘을 뺐다. “좀 있다가.” “…….” “…….” “좀 있다가 언제.” “…….” “배고프다고 하면 그것도 좀 있다가 먹자고 할 거야?” 밥 얘기가 나오면 최호찬도 왠지 더 늦장을 부릴 수 없어진다. “알았어. 뭐 먹고 싶은데?” “몰라……아무거나 씹을 수 있는 거.” “껌 줄까.” 결국 이창이 그를 떨쳐내며 스스로 빠져나왔다. 최호찬도 뒤따라 몸을 일으켰다. “일단 병원부터 가고……옷도 갈아입어.” “그래……야, 너 얼굴 긁혔다.” “팔 덜렁거리는 사람한테 이런 말 들어야 하나.”
누구 것인지 모를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얼마 안 가 그들은 북적거리는 산 자들의 공기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끓는 불판 위, 빠져 죽지도 못할 냄비 속을 헤집을 때. 끈적이는 반죽 속에서 뒤엉킨 채 굳어버린 살들을 마음껏 찢어댈 때.
남겨진 물은 지금도 그곳을 고고히 흐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