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거북, 해양 생물의 죽음 및 섭식에 관한 묘사

 

  녹슨 쇠벽과 차가운 철판이 인간들을 내려다본다. 거센 파도 탓에 벽에 계속해서 상자들이 부딪친다. 마치 육중한 남자가 문을 두드리는 듯한 착각 속에서 그들은 깨어난다. 처음 깨어난 것은 창백한 얼굴을 한 젊은 여자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붙잡은 채 자신의 손에 무어라도 잡히길 바라며 바닥을 더듬고 있다. 몸을 기댈 곳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파도는 인간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므로, 젊은 여자는 지지대를 찾기보단 입가를 틀어막는 것에 집중한다. 어지럽게 일렁이는 시야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어둡게 음영이 진 곳엔 인물들이 놓여있다. 조이스 맥밀런은 어렵지 않게 자기 혈육을 찾아낸다. 조금이라도 입을 열면 구토를 멈추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여자는 입가를 틀어막은 채로 바닥을 기어간다. 습기가 맨다리와 후드 끝자락에 묻어나며, 붉은 녹가루를 옮긴다. 지난한 시간을 보낸 여자는, 웅크려 기절한 거구의 남성을 깨운다. 핏기 없는 손이 연신 어깨를 흔든다. 남자는 앓는 소리를 낸다. 젤을 바른 머리 스타일과 히피처럼 차려입은 옷차림은 이 화물선 지하에선 쓸모가 없다. 조이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른다. 그녀는 이성은 이 상황을 정의 내리지 못했으나, 영혼은 빠르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조난, 혹은 납치. 등짝을 연신 두들기는 손의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진다.

 

“일어나 이 멍청아!”

 

 

  불안은 곧 분노로 전환된다. 어쩌면 조이스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미덥지 못한 혈육에게 화를 내고 의지할 기회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다. 여자는 근처의 인간들을 경계하며 조슈아 맥밀런에게 가까이 붙는다. 조이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조슈아는 눈을 뜬다. 그가 기절해 있는 동안, 무언가에 부딪히기라도 한 건지, 뒤통수 한편이 욱신거려 온다. 은연중에도 그는 헤어스타일을 망치지 않게, 자기 손을 뒤통수에 댄 채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눈 앞엔 또 조이스의 모습이다. 망할 비가 쏟아지네. 폭풍이라도 치는 건가? 그나저나 얘는 언제 돌아왔지? 남자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헛소리하지 말고 정신이라도 좀 차려! 조이스의 손이 그의 어깨를 붙들고 흔든다. 남자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까지는 약 2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몇 차례 숨을 고르고, 조이스에게 혼란스러운 질문을 하던 남자는 자신이 어떤 배에 납치되었다는 사실에 반쯤 비명을 지른다.

 

 

“너 무슨 사기라도 친 거야? 왜 나까지…!”

“헛소리하지 말고 정신이나 차려! 난 그럴 일 없거든?”

 

  두 남매가 투닥거리는 소리는 웅웅대는 소음으로 번져 다른 조난자들의 귀로 들어간다. 엘런 머피는 마치 습격을 당한 사람처럼 일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손끝과 발끝의 통증이 그녀를 끔찍하게도 반겨 주었다. 굽이 낮은 구두의 뒷굽은 살짝 헐거워졌고, 매끈하던 정장 치마는 끝단이 살짝 너덜거렸다. 이는 엘런 머피만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한 징후다. 하지만 사냥은 그런 단순한 일에서부터 어긋나는 것임을 엘런은 알고 있다. 징후는 결코 가볍지 않고, 통제할 수 없는 자연 속에서 동물은 금세 방향을 잃어버리고 만다. 여자는 어렵지 않게 자신이 어떤 사냥에 들어와 있음을 눈치챘다.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이 된 모양이지. 여자는 속을 뒤집는 짜증을 억누르려 해본다. 깊은 호흡과 침묵. 이는 엘런이 요긴하게 쓰던 방법이다. 연신 말싸움을 하는 이들은 이미 구면이고, 여전히 시끄러운 대화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엘런이 깨어난 걸 알지도 못하는 머저리들을 뒤로한 채, 엘런은 자신의 곁에 쓰러져 있는 두 중년의 남녀를 바라본다.

 

  거구의 남성과 그의 곁에서 잠든 여자. 둘 다 바닥 쪽으로 쓰러져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엘런은 남자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다. 정신 좀 차리지 그래요? 날카로운 목소리에 조이스와 조슈아의 대화가 일순 멈춘다. 정적 속에 남자가 신음한다. 그는 겨우 몸을 일으킨다. 수염을 기른 새파랗게 어린 저 청년들에 비해 이 둘은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인다. 말이 통하길 발어야겠군. 엘런은 뒤에서 들려오는 속닥거림을 무시하며 조금 신경질적으로 남자의 어깨를 흔든다. 덥수룩한 수염과 안경을 쓴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의 곁에 누워있던 여자를 확인했고, 안도와 착잡함이 뒤섞인 듯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덥수룩한 수염을 한 남자는 꽤 정중하게 질문을 이어간다. 하지만 충혈된 눈과 잠긴 목소리까지 가릴 순 없는 법이다.

 

 

“…. 그쪽은 이곳이 어딘지 압니까?”

“불행하게도 내가 줄 수 있는 대답은 아니오. 뿐이네요. 저 젊은이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깼으니, 저쪽에나 물어보던가.”

“ 제기랄, 알겠소. 내 참고하지.”

 

 

  남자는 곁눈질로 맥밀런들을 바라본다. 조이스는 당장이라도 달려들듯 몸을 옹송그린 채, 데릭이 어떻게 행동할지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의 조슈아는 조이스보단 뒤에 서서 상황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혈육과는 다르게, 그는 탈출구를 곁눈질하고 있다. 조슈아의 시선에 드디어 이 공간이 제대로 인식된다. 컨테이너로 가득 찬 화물칸. 엘런 역시 그와 비슷한 것을 바라보고 있다. 대형 화물선이군. 사람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그녀는 어렵지 않게 많은 것들을 계산해 낸다. 천장은 대략 2.5m, 하지만 넓은 바닥 너머로 좀 더 높이 쌓여있는 컨테이너들이 눈에 띈다. 그것들은 방처럼 빈틈없이 짜였다. 그리고, 얇은 철 사다리가 덩굴처럼 늘어져 있다. 조슈아는 속으로 욕지기를 삼킨다. 혼자서 도망치기엔 너무 넓고 미로 같은 곳이다. 그의 긍정적인 면모마저도 거대한 미로 앞에선 한풀 꺾이고 만다.

 

“... 이렇게 인사하게 되어 유감이군. 데릭 데버로 일세.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이는 내 아내, 딜런 메이 데버로이고.”

“... ... 금슬 좋은 부부 납셨네.”

 

 

  여자의 인내심은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뱉고선 차분한 어조로 덧붙인다. 엘런 머피.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무리에게서 살짝 떨어져나와, 컨테이너들을 유심히 살폈다. 달력, 휴대폰, 뭐든 알아내기 위해 형형한 눈동자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했던 조이스는 여전히 경계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조이스 맥밀런. 이 멍청한 놈은 조슈아.”

“왜 내 소개를 네가 대신 하고 그래? 처음 뵙겠습니다.”

 

  넉살 좋은 젊은 남자의 목소리를 끝으로, 그제야 가녀린 체구의 여자가 정신을 차린다. 조금씩 떨리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흐트러진 머리를 살짝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여자. 여자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익숙한 남편의 체온을 느낀다. 비가 쏟아지네. 빨래를 걷으러 나가야 할 텐데. 딜런 메이는 빠르게 일어나 집안일을 하려 하지만, 고된 시간을 보낸 육체는 그녀를 따라 주지 않는다. 세상에,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기라도 한 건가? 욱신대는 허리를 한 손으로 짚은 채, 흐린 눈을 연신 비빈다. 초점이 돌아오고, 여자의 눈 앞엔 익숙한 남편과 모르는 이들이 보인다. 귀를 때리는 빗소리와 시끄러운 파도 소리. 한참 동안 침묵하던 여자는 멍한 눈빛으로 탄식한다.

“... 이게 지금 어떻게 된건가요?”

 

 

*

 

 

  마침내 인물들이 모두 갖추어지고, 배경은 빠르게 연속된다. 그들의 대화는 파편처럼 이루어진다. 우리 여기에 갇힌 건가요? 뻔한 말들은 끝까지 읽히지 못한 채로 넘어간다. 그들은 컨테이너 내를 헤매고, 또 헤맨다. 신이 있다면 이들의 방황을 아주 즐겁게 관람했을 것이다. 빠르게 흐르는 필름 테이프의 잡음 아래, 시선이 하나의 장면을 포착한다. 관점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들은 손발에 붉은 녹을 묻혔다. 깨어났을 때보다 훨씬 굶주리고 수척한 얼굴을 했다. 창문은 막혀있기에, 이 공간이 배인지조차 이들은 확언하지 못한다. 그저 썩고 헤진 물건들로 가득 찬 컨테이너를 뒤지고 또 뒤진다. 출구, 음식, 사소한 물건들 하나하나 뒤져보며 분노와 허탈함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초점이 완전히 맞은 지금. 결국 누군가의 분노가 터져 나온다.

 

데릭 데버로 : (남자의 손이 벽을 내리친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사람을 갖고 노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난 내 삶에 떳떳하오. 내 아내는 더더욱 그렇고. 이런 저질 납치극에 동원해 놓고 나타나지도 않다니.

  큰 소리에 맥밀런 남매와 엘런은 데릭을 경계한다. 그가 돌발행동을 한다면 여기 있는 누구도 쉽게 막진 못할 것이다. 조이스는 조슈아가 그를 막으려 나서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형형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날카로운 반응에, 데릭은 입을 다문다. 하지만 여전히 화를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남자의 손을 그의 아내가 붙잡는다. 하지만 여자의 손 역시 떨리고 있다. 그녀는 다른 손으로 앞치마를 꽉 쥔 채, 분위기를 풀려는 듯 주변 이들을 바라본다.

딜런 메이 데버로 : (애써 웃으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그이 말대로에요. 저흰 정말 선량하게 살아왔어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도, 더 많은 재물을 탐하거나 범법을 저지른 적도 없는걸요. (여자는 청중의 반응을 의식하며 웃는다. 최대한 많은 이들과 눈을 맞추며 조금씩 다가간다) 그건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조이스 맥밀런 : (말을 끊으며 대꾸한다.) 그야 당연하지! 이런 되도않는 일에 왜 내가 끌려와야 하는데?

엘런 머피 : (코웃음 친다.) 아무도 이유가 없다니 우습네. 그럼 더더욱 살아 나갈 확률이 없을 것 같네. 안 그래? 이렇게 거대한 배를 동원할 정도의 미친놈이라면, 이윤을 따지지 않는 자야.

 

조슈아 맥밀런 : (깊은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댄다.) 엘런씨의 말대로면 완전히 망한 거네요. 여기서 나갈 수도 없고, 납치범도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고 있잖아요. 그렇다고 감시하지도 않고. 대체 뭘 원하는 걸까요?

 

  다섯 명은 침묵한다. 그들의 경험과 생각, 시선으로는 그 무엇도 알아낼 수 없다. 모두 피로하고 긴장된 낯을 하고 있으나, 비밀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켕기는 것이 있는 인간들 특유의 비겁함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아직 까지는. 일행들은 자신들이 챙겨와 바닥에 흩뿌려둔 물건들을 본다. 철판 위에 나뒹구는 잡동사니들. 거대한 무쇠솥과 그에 비해 너무 작은 버너 여러 개. 고기를 겨우 손질할 수 있을 정도의 무딘 칼. 거친 천 한 묶음. 대형 망치와 날카로운 작은 단도. 유통기한을 알 수 없는 토마토 캔 대여섯 개가 끝이다. 대응할 수 있는 무기를 얻은 것 외엔 성과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굶주림도 잊은 채 데릭이 입을 연다.

 

데릭 데버로 : 우선 계속 움직이는 게 좋겠네. 힘이 있을 때 뭐라도 해두는 게 나을 테니.

  앞장서는 남자를 다른 이들이 바라본다. 그들은 각각의 성격에 맞춰 움직인다. 신경질적인 구둣발 소리. 무겁게 질질 끌리는 운동화 소리와 가벼운 또각대는 소리. 그리고 느리게 이어지는 발소리까지. 그들은 다시금 컨테이너를 뒤진다. 작은 단도로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벽에 일렬로 표시한다. 일행들은 점차 속도가 느려지고, 어느새 표식이 있던 곳으로 되돌아온다. 볼 수 있는 곳은 다 봤으나, 마땅한 진전은 없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볼썽사납게 얼굴 근처에 달라붙는다. 이제 모두가 공통된 허기와 갈증을 느낀다. 바닥의 습기는 그들의 발을 더 미끄럽게 만들고, 몇몇 이들은 결국 넘어져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공교롭게도 일행들이 휴식하는 공간은 처음 눈을 뜬 곳이다.

 

엘런 머피 : (탄식하며)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네.

  카메라도 없고, 인기척도 없어. 엘런은 짜증 내며 거친 천 더미 위에 걸터앉는다. 따끔거리는 재질의 천은 오히려 여자의 화를 부추긴다. 조슈아는 토마토 스프 캔을 단도로 따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어설픈 손으로 캔을 따려던 조슈아는, 결국 손 끝을 약하게 베이고 만다. 딜런 메이는 손수건을 꺼내 그의 손을 지혈하고, 데릭은 그를 훈계한 후 통조림을 건네받는다. 엘런은 충동적으로 근처에 있던 금속 쓰레기를 집어던진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탓이다.

 

바닥 한구석이 가볍게 일그러지며, 덜컹거리는 소리가 난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향한다.

 

  이견을 포착한 조이스가 바닥이 일그러진 곳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움푹 파인 철판이 경첩으로 연결되어있던 걸 알아낸다. 다른 곳보다 얇은 철판이 힘을 이기지 못하며, 녹으로 가려져 있던 지하 입구를 드러낸 것이다. 조슈아와 데릭이 뒤따라 철판의 경첩 부분을 집요하게 부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얇은 철판이 아래로 떨어진다. 약 2초간의 정적 후, 바닥으로 떨어진 얇은 철판은 완전히 일그러졌다. 사람 4명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 크기의 구멍과 쇠로 된 사다리 하나. 다른 층으로 갈 탈출구를 우연찮게 얻어냈다. 그런 일행들 사이로 딜런 메이가 먼저 나선다.

 

딜런 메이 : ... 우리, 우선 토마토 캔부터 먹고 움직일까요?

 

  다들 지쳤으니까, 잠깐 쉬면서요. 여자는 어느새 다섯 개의 캔을 다 따 두었다. 일행들은 서둘러 토마토 캔을 마신다. 살짝 짭짤하고 새큼한 맛이 인상을 찡그리게 한다. 더럽게 맛없네. 조이스가 투덜거리지만 아무도 그녀가 진심으로 불평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결 편안해진 침묵이 그들 사이를 누빈다.

 

 

 

*

 

 

  갈증을 해결한 그들은 아래로 내려간다. 철을 밟는 소리와 함께 일행은 어두운 지하에 도달했다. 이 곳 역시 대다수의 공간은 컨테이너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표시를 제외하면. 조금 움직이자 이 곳은 지하 선원실임을 알 수 있었다. 세면대에선 약하게나마 물이 흘렀고, 화장실과 침실이 있었다. 길고 긴 갈증이 드디어 보답받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조금 퀴퀴하지만 몸을 뉘어 쉴 수 있는 휴식 장소를 얻어냈다. 안도감이 찾아들면서, 긴장 속에 숨겨졌던 본능이 슬쩍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들은 배고프다는 불평을 할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내면서 움직였다. 메스꺼운 토마토 캔을 먹는 게 옳지 못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식물이 들어간 위는 더욱 거세게 아우성친다. 휴식과 공복이 일행들을 자극한다. 그들은 잠으로 도피해보려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썩은내가 나는 곳을 발견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다른 생명체와 조우한다. 이끼가 가득한 어항에서 겨우 숨쉬고 있는 바다거북이다. 거북의 등껍질은 사람 하나의 몸통보다 크며,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일행을 보고 부리를 부딪히며 위협한다. 허나 그 몸짓은 오히려 거북이 죽음 앞에 서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처럼 보인다. 거북은 유리 어항에 거세게 몸을 부딪힌다. 불길한 소리. 유리가 마치 금방이라도 깨질 것마냥 흔들리고, 일행은 공포에 질린다. 그러다 동시에 모두가 엇비슷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약육강식. 만약이라는 가정을 계속해서 곱씹을 정도로 무리는 모두 굶주려 있다.

 

*

...

 

... ... ... ...

 

당신들은 거북을 무시한 채로 뒤돌아선다.

 

 

  모두는 굶주림보다 인간성을 택했다. 몇 몇 이들은 아쉬워하지만, 께름칙한 일을 구태여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다. 사람들은 선원실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일행들은 그제야 소개를 마친다. 한쪽은 남매, 한쪽은 부부. 구면인 사람들은 두 명씩 방에 들어가고, 엘런 머피는 독실을 배정받는다. 방에선 각자 방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나, 복도에 나가면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여실히 들린다. 엘런은 자신이 숨겨둔 토마토 캔 두어개를 꺼낸다. 일행들이 아둔한 탓에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여자는 저들을 의심한다. 누구와도 연이 없는 이는 자신 뿐이다. 최악의 상황에, 저 4명이 납치범일수도 있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희생할 순간이 다가오면 엘런은 자신이 가장 먼저 버려질 것을 알았다. 그게 여자의 방식이었으니까. 여자는 버려지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들을 버리기로 한다. 체력이 모자랐기에 모두가 컨테이너 박스를 확인하지 못했다. 위에 올라가 무기로 쓸만한 것과 식량, 식수를 찾아내야 했다. 엘런은 선원실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다른 이들의 대화 소리를 엳들었다. 여기서 믿을 건 우리 밖에 없어. 각기 다른이가 내뱉은 말 소리. 엘런은 조소한다. 그래, 여기서 믿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지. 여자는 철로 된 사다리를 빠르게 올라간다. 여자는 확인하지 않은 곳들을 더욱 꼼꼼히 확인한다. 과정은 순조롭다. 엘런은 잘 밀봉된 스프캔 한 박스와 날카로운 주방식칼을 찾아낸다. 5명이 1주일은 충분히 보낼 수 있는 양이나, 여자는 소량만 챙긴 채 어두운 천으로 박스를 덮는다. 더욱 여자를 고무시킨 물건은 따로 있다. 건전지가 들어있고, 신호가 잡히는 무전기를 얻었다. 여자는 무전을 킨다. 하릴 없이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엘런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 노련한 사냥꾼은 사냥감이 안심하길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쉭쉭대는 호흡소리, 감청색 잠수복을 입은 거대한 형체가 점차 엘런 머피에게 다가온다. 엘런 머피가 그것의 기척을 알아챘을 땐, 이미 늦었다.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여자가 쥐고 있던 무전기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

... ... ... ...

 

 

당신들은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거북을 죽였다. 바다거북의 신선한 사체를 얻었다.

 

 

  더 이상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조슈아는 엘런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그는 본능적으로 배를 채워야 이 아슬아슬한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음을 직감한다. 그래야 자신의 목숨줄도 조금 더 오래 지속되는 것도. 그는 데릭과 딜런을 부추겨 바다 거북을 죽이는 쪽으로 설득한다. 엘런이라는 여자는 질색하나, 자리를 떠나진 않는다. 머리와 팔다리를 무딘 칼로 썰어낸다. 목 안쪽에 있는 내장을 꺼내, 등껍질 내부가 부패하는 걸 최대한 늦춰보기로 했다. 그나마 만만한 앞 지느러미를 버너에 통째로 올려 굽는다. 불 조절에 실패에 반쯤 탔지만, 껍질을 벗기니 결대로 찢어지는 살점이 보인다. 마치 젤리처럼 반투명한 살점을 모두가 조금씩 나눠 먹는다. 거북의 맛은 나쁘지 않다. 닭고기에 가까운 맛이라고 조슈아는 생각한다. 더 이상 죄책감이나 역겨움은 일행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긴장되어 있던 몸을 풀고, 식사를 나누며, 조금씩 사적인 대화를 나눈다. 식사를 다 마칠 때 즈음,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방문한다. 컨테이너의 앞쪽 문을 완전히 채울 정도로 거대한 형체. 두족류의 다리처럼 보이는 물체가 일행을 습격한다. 다른 이들은 패닉에 빠져 최대한 근처의 무기를 들고 대척한다. 하지만 조슈아는 홀로 뒤쪽 문으로 컨테이너를 빠져나갔다. 조슈아는 비명을 지르며 본능대로 행동한다. 뒤에서 조이스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지만, 공포에 질린 남자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 급하게 내달리던 남자의 발이 차가운 바닥이 아닌 부드러운 살덩이를 짓누른다. 미끈대는 점액으로 덮혀진 것은 분명히 숨을 쉬고 있다. 잘게 떨리는 살덩이는 다리를 내밀어 남자의 발목을 붙잡고, 자신의 입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밀어 넣는다. 겨우 두족류를 태워낸 일행들은 도망친 조슈아가 거대한 두족류에게 먹히는 모습을 막연하게 바라본다. 노란색 눈을 빛내는 그 생물은 천천히 아래로 사라진다. 조이스는 미덥지 못한 혈육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 속에서 혼란에 빠진다. 그녀는 소리를 지른다. 비명, 절규, 울음소리. 그것이 어떤 미래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채로.

 

...

... ... ... ...

 

 

당신들은 거북을 죽였다. 바다거북의 신선한 사체를 둔 채 멍하니 시선을 고정한다.

 

 

  약한 현기증이 모두를 괴롭힌다. 두통과 피로는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면 저 거북을 무리해서 죽인 게 문제 였을까? 막상 거북의 고기를 먹으려니 내키지 않는다. 딜런과 데릭은 거대한 바다거북을 데리고 씨름하고 있고, 엘런은 약간 거리를 둔 채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조슈아는 입가를 막은 채 구역질을 참는다. 조이스는 이 전반적인 상황이 다 한심하게 느껴진다. 짜증과 화가 솟구치지만, 거북을 손질할 생각따윈 전혀 들지 않는다. 조이스는 컨테이너 바깥을 곁눈질한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향해 느리게 기어오던 거대한 두족류를 발견한다. 검붉은 색깔, 점박이 무늬와 노란색 눈. 그것은 둥그런 머리를 바닥에 늘어뜨린 채 역겨운 점액질을 남긴다. 새된 비명소리. 일행들은 서둘러 컨테이너 바깥을 보고, 괴생명체를 막을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컨테이너에 널부러져 있던 천을 칼로 잘라낸다. 근처에 있던 합판으로 톱밥을 만들고, 뻣뻣한 천에 거북의 피와 기름을 먹여, 막대기에 감아낸다. 톱밥을 천에 덧발라 버너로 불을 붙인다. 예상외로 횃불은 거세게 타오른다. 데릭은 막대를 잡아 빠르게 횃불을 두족류에게 던진다. 2m 내외로 다가오던 그것은 불이 몸에 닿자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조이스는 고통스러운 압박감 속에 움직이는 걸 택한다. 그녀는 무모하게 긴 칼을 들고 두족류에게 달려들어 눈을 깊숙이 찌른다. 칼이 완전히 머리를 관통할 때 까지 밀어 넣자, 그것은 계속해서 꿈틀거리다 결국 움직임을 멈췄다. 몸통 한 구석이 그을리고 검은 진액으로 뒤덮힌 두족류는 이제 그저 일행들의 전리품일 뿐이다. 현실감이 없어 보이는 딜런은 새로운 식량이 생겼으니 이걸 어떻게 먹을지 고민해보자며 들뜬다. 조이스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나, 싸움을 할 기력이 없어 그저 바닥에 주저않는다. 혈육을 다그치며, 다른 이들이 심해생물의 사체를 컨테이너 쪽으로 옮기는 걸 바라본다. 눈을 관통한 칼을 뽑아내어, 다리를 잘라낸다. 조이스는 몸을 웅크린 채 그 과정을 보고 있다. 자신을 바라보던 노란색 눈동자가 눈을 감을수록 되풀이 된다. 그건 그냥 동물일 뿐이야. 조이스는 후드를 뒤집어 쓴 채 피로한 현실에서 도망친다. 데릭과 딜런은 문어를 손질하는 것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고, 조슈아는 자신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벽에 기대 쉬고 있다. 엘런은 위층에 가서 쓸만한 물건을 찾아보겠다며 컨테이너를 나갔다. 모두가 산만한 지금, 노란색 눈동자가 조이스를 주시한다. 그것은 잘리지 않은 다리를 휘둘러 방심한 여자를 잡아챈다. 입과 몸통을 다리로 감은 채 두족류는 먹이를 끌어 당긴다. 입이 막힌 탓에 조이스의 비명 소리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는다. 여자는 날카로운 이빨에 뺨이 긁히는 고통과 공포 속에서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몸부림친다. 언뜻 보인 시야로 조슈아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공포에 질려 완전히 굳어있다. 도움을 청하지도, 움직여 조이스를 구하지도 못한 채. 찰나의 순간이 지난 이후에야 그는 비명을 지르지만... 조이스는 그것의 입 속으로 사라진다. 동시에 다급한 구둣발 소리가 들려온다. 엘런 머피는 무언가에게 쫓긴 채 컨테이너로 돌아온다. 그녀가 끌고 온 불청객과 사람을 집어삼킨 괴생명체가 한 컨테이너에서 조우한다. 당신들은 완전한 체념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죽음을 앞둔 그 시간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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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당신들은 바다거북을 죽였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온다. 속이 미식 거린다. 마치 술을 퍼마신 다음 날처럼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축 늘어진 거북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는 붉은 색이다. 이 동물도 우리와 같은 피의 색을 지녔다. 하지만 동시에 비슷한 깨달음을 얻는다. 모든 생명을 다른 생명을 먹어치워야 하는 저주에 걸렸다는 걸. 누군가 경고를 전한다. 갑자기 살아있는 동물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엘런 머피의 말이다. 그녀는 우리가 납치된 상황임을 잊어선 안된다고 거듭 당부한다. 여자는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2명 3명으로 나뉘어 주변을 순찰 하자고 얘기한다. 최대한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 선에서. 식사는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하다고 얘기한다. 가지고 있는 무기를 점검하고, 거북의 사체를 이 곳에 둔 채 다른 컨테이너에 몸을 숨기자는 의견도 망설임 없이 주장한다. 데릭은 엘런의 말을 진중한 태도로 들으며 동조한다. 맥밀런 남매는 반사적으로 반발하나, 이내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듯 침묵한다. 딜런은 미뤄진 식사에 아쉬움을 표방하나, 엘런 머피의 의견에 따른다. 그들은 남매와 어른들로 나뉘어 직원실과 통로 근방을 수색한다. 맥밀런 남매는 컨테이너 가장 구석 철판에 동그란 뚜껑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한다. 아래로 내려가는 쇠 사다리와 함께, 그 밑엔 거대한 두족류가 몸을 웅크린채 꿈틀댄다. 금빛 외눈으로 인간들을 뚫어지게 보는 그 심해생물의 모습에, 남매는 둥그런 철판 위를 짐들로 막는다.

  엘런 머피와 데버로 부부는 위층을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그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잠수복을 입은 이가 저 너머에서 다가오는 걸 목격한다. 그것의 키는 2m가 훌쩍 넘었기에, 사람이 아니라는 본능적 직감은 유효했다. 일행들은 빠르게 컨테이너로 돌아와 조우 한다. 횡설수설한 말로 서로의 상황을 공유한다. 아래로 내려오는 어인은 막아설 수 없다. 정체불명의 문어는 아직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행들은 컨테이너에서 무기를 챙긴다. 단도, 망치, 손질용 장검. 일행은 각자 나눠져 선실과 2층 컨테이너에 숨는다. 철판을 울리는 육중한 발소리. 잠수복을 입은 괴생명체는 아래로 내려온다. 맥밀런 남매는 2층 컨테이너에서 무쇠솥을 떨어트린다. 잠수복의 머리가 솥에 갇히며, 그것은 버둥거린다.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진 탓인지, 비틀대며 벽에 기댄다. 데릭 데버로가 앞으로 나서, 질긴 잠수복을 칼로 꿰뚫으려 해본다. 칼은 잠수복을 뚫을 만큼 날카롭지 않다. 그는 대형 망치를 손에 쥔 채, 잠수부의 목을 향해 휘두른다. 둔탁한 소리가 몇 번이고 이어지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물이 흘러내린다. 잠수부는 솥 위를 손으로 더듬거리며 비틀대다, 결국 쓰러진다. 모두를 불편하게 할만큼의 침묵이 지난 후에도 저것은 숨을 쉬지 않는다. 데릭은 아린 손으로 망치를 강하게 쥔 채, 솥을 벗겨낸다. 잠수복의 이음새가 망가져, 그 사이로 물방울이 맺혀 떨어진다. 남자는 완연한 승리를 예감했음에도, 조심스레 헬멧을 벗겨낸다. 거대한 악어의 머리통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나타난다. 우두투둘한 가죽과 거대한 입. 눈꺼풀을 감지 못한 채 뻣뻣이 굳은 동공은 공허하다. 허나 그것은 악어와 다르게 척추와 연결된 목 부분이 움푹 들어가, 마치 사람이 대형 파충류로 변한듯한 착각을 준다. 일행들은 충격속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얼어붙는다. 새된 목소리가 윽박지르듯 고함친다.

 

 

“저 새끼 머리를 잘라버려야 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잖아!”

 

  조이스는 구역질을 참으면서도 단도를 쥔 채 달려든다. 여자는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공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가늠하지 못한다. 본능에 충실한 여자는 그저 지금, 저것의 목숨을 확실히 끊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그녀는 단도로 파충류의 목을 긋는다. 척추와 지방으로 인해 칼날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조이스가 연신 안간힘을 쓰자, 딜런이 조용히 곁에 서서 긴 검으로 어인의 목을 잘라낸다. 스산한 서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검붉은 피가 계속해서 바닥으로 쏟아지고, 바다 냄새와 뒤섞인 역겨운 피비린내에 누군가는 구토를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내달린다. 그들이 반절정도 목을 잘라냈을 때, 넋을 놓고 있던 데릭이 여인 둘을 뒤로 물린다. 너덜너덜해진 목을 자르며 그는 생각한다. 이것은 살인이 아닌가?

 

 

*

 

 

  비참하게도, 이들에겐 음울한 상념에 젖어 있을 만큼의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바닥에서부터 전해지는 진동 소리가 불청객의 방문을 알린다. 이윽고 잡동사니가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마치 채찍이 휘둘러지는 듯한 파열음이 복도를 가득 메운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났네! 조슈아는 탄식한다. 인간보다 거대한 저 문어가 어떻게 이 배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다. 저질 호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다. 조슈아는 짧은 순간에도 공상에 빠져든다. 그는 장르 영화의 조잡한 세트장을 보며 몇 번이고 코웃음치곤 했다. 투자를 받지 못해 소규모로 찍어 엉성한 영상들. 비디오 대여점에서 썩어가다, 결국 창고행인 비디오들 말이다. 그는 각본이 막힐 때 마다 어떻게 납품되었을지 모를 영화들을 빌려 보곤 했다. 그것들을 보며 코웃음 치고, 자신이 갈 할리우드를 상상하기 위해 그 영화들을 비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슈아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뤘다. 남자의 각본은 조잡한 세트장 위에 얹혀질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니까. 씁쓸한 자조를 곱씹기도 전에, 징그럽게 빨판이 달린 다리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젠장! 남자는 쓸데 없는 생각을 관두고 살아있는 것에만 집중했다. 조슈아는 일행들이 있는 컨테이너로 가까스로 들어간다. 철문이 있는 컨테이너로 들어간 이들은, 검 손잡이를 천으로 감싼 채, 검의 뭉툭한 부분들을 버너로 달구고 있다.

 

“저 소름 끼치는 눈을 노리는 게 제일 좋겠어.”

 

다신 움직이지 못하게. 조이스 맥밀런은 불안한 기색으로 속삭인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컨테이너에서 튀어나갈 것만 같다. 조슈아는 자신도 모르게 조이스의 팔을 붙든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조이스는 그의 손을 쳐낸다.

 

“건드리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

“... 네가 직접 할 건 아니지?”

 

 

  다른 분들에게 맡겨. 비겁한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이스가 나설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조슈아는 축축한 손을 셔츠 밑단으로 닦아낸다. 죄책감은 공포에 잡아 먹힌 지 오래다. 다행스럽게도 데버로 부부 역시 앞장서 조이스를 막았다. 조슈아는 한 발 물러서 세 명이 대화하는 걸 살핀다. 순진한 인상의 여자는 마치 이웃 사촌을 대하듯 조이스를 챙겨주고 있다. 살가운 태도와 경계심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행동들. 그리고 그런 여자를 무뚝뚝한 남자는 과잉 보호 하고 있다. 깊은 생각없이, 조슈아는 본능적으로 저 부부에게 다가간다. 그는 명석한 머리를 가지진 않았으나, 처세에 능숙했다. 적어도 날 선 여동생보단 훨씬. 조슈아는 그들 사이에 껴 자연스레 대화를 주도한다. 한참의 대화 이후, 결국 중년의 남자, 데릭이 자신이 문어를 상대하겠다고 나선다. 조슈아는 망을 보는 일을 맡는다. 언뜻 그의 시선에 이질적인 바닥이 걸린다. 통제할 수 없이, 그는 반사적으로 소리친다.

 

“발 밑 조심해요!”

 

 

  데릭은 흠칫 놀라 그 자리에서 멈춰선다. 의태한 살덩이가 꾸물거리며 남자의 발 옆을 스쳐지나간다. 거대한 문어의 잘린 다리처럼 보이는 것들은, 자유의지를 가진 것마냥 계속해서 움직인다. 남자는 뒤로 물러나, 그것들을 달군 칼로 가차없이 썰어낸다. 생선을 굽는것과 비슷한 탄내가 나며, 하얗게 익은 살점 덩어리가 바닥에 내버려진다. 칼을 쥔 손바닥이 마치 타오르듯 뜨겁다. 끔찍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칼을 고쳐잡고, 문어의 눈 가운데를 깊숙하게 찌르고 뒤로 물러난다. 문어의 촉수는 달군 칼을 잡아보려 하지만, 잡아채려 하면 할수록 다리가 잘려나간다. 다리가 다 잘려나가 꼴사나운 모습이 된 그것은, 마침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다. 머리 중앙이 붉게 익어있는 문어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딜런은 문어의 감시를 맥밀런 남매들에게 맡긴 후, 서둘러 데릭 데버로에게 달려간다. 그녀는 화상을 입은 데릭의 손을 손수건으로 감싼 채, 화장실로 데려간다.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차가운 수돗물이 상처 위로 흐른다. 남자는 간헐적으로 몸을 움츠리나, 이내 딜런의 표정을 보곤 이를 꽉 악문다. 딜런은 어렵지 않게 데릭의 상황을 알아챘지만 추궁하지 않는다. 딜런은 손의 상처를 확인하고는 대꾸한다. 그래도 상처가 크진 않네요 자기. 다음부턴 그냥 도망쳐요. 데릭은 대답하지 않는다. 화장실 문 너머로 맥밀런 남매의 시선이 느껴졌던 탓이다. 의도치 않은 척 문을 닫는다. 질문을 하려 딜런을 부르기도 전에, 여자는 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버린다.

 

“우선 저녁부터 먹고 얘기해요. 다들 너무 지쳤는 걸요.”

 

 

 

*

 

 

  딜런 메이 데버로는 기진맥진한 일행들을 선원실에 모아두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컨테이너들에서 물건들을 챙겼다. 그녀는 힘을 쓰는 일엔 젬병이었으나... 확실히 꼼꼼한 면이 있었다. 밀봉된 작은 밀가루 포대와 씁쓸하고 매콤한 냄새가 나는 향신료 한 주먹을 찾아냈다. 작은 식칼과 식기로 쓸 수 있을법한 스푼들을 세면대에서 깨끗하게 씻어오기도 했다. 위협이 사라진 선원실은 흡사 누군가의 가정집으로 느껴질만큼 분주한 공간이 되었다. 딜런 메이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다른 인상으로 남았다. 누군가에겐 현실성 없는 여자로. 누군가에겐 다정하고 강한 의지의 이로. 누군가는 그녀를 정의내리는 걸 완전히 포기한 채, 경계심을 가지고 연신 보기만 하기도 했다. 여러 변덕스러운 시선들에도 딜런 메이는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걸 진짜 먹으려고 움직이는 건가?”

 

  완전히 미쳤군. 믿을 수가 없어. 엘런은 문어 다리를 솥에 모아, 밀가루를 뿌리는 모습에 반쯤 비명 지른다. 경악한 여자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딜런 메이는 엷은 미소를 띈 채 고깃 덩어리들을 손질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나무에서 다 익어서 떨어진 과일과, 이 고기들이 뭐가 그렇게 다르다구요? 낭랑한 목소리에 엘런은 빠르게 판단을 마쳤다. 대화를 나눌 보람도 없는 이군.

 

“가능하면 내 몫은 빼줘. 그런 요리 먹을 생각 없으니 말이야.”

“그래도 배를 채워두는 편이 좋으실텐데... 알았어요.”

 

  뜻이 그러시면 어쩔 수 없죠. 현실성 없는 여자는 이제 반쯤 콧노래를 부르며 두족류 다리의 점액질을 씻어내고 있다. 그릇에 물을 받아 솥을 헹궈낸 후, 바다 거북의 몸에 붙어 있던 기름을 솥에 두른다. 일회용 버너 여러 개를 이어붙여, 그 위에 솥을 얹어 기름을 끓였다. 자글자글 대는 소리와 함께 느끼한 냄새가 지하 선실 복도를 채운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들도 따듯한 음식의 냄새에 기웃거리며 복도 한가운데로 모인다. 솥이 달궈지는 동안 딜런 메이는 부지런히 나무로 된 막대를 깎아내, 꼬치처럼 만들어 살점을 엮어냈다. 여러 향신료가 뒤섞인 조미료를 고기에 발라 그릇 위에 겹겹이 놓아둔다. 여자의 능숙한 손길과 역겨운 재료. 처음엔 모두 질색하며 돌아갔으나, 딜런 메이가 고기를 달궈진 솥에 넣자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은 모두 지치고 굶주렸다. 차갑고 역겨운 토마토 캔을 먹은 게 식사의 끝이다. 다들 목숨이 위협당하는 시간을 오래도록 버텨냈다. 견고한 이성에 틈이 생기기엔 충분하다. 차가운 발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고독이 몸을 집어 삼키기 전에, 배고픔을 잠재우면 확실히 인내심을 기를 수도 있을 터였다. 각자의 합리화, 혹은 굶주림, 혹은 단순한 호기심. 각기 다른 이들이 다시금 딜런의 옆에 모인다. 달궈진 기름에 익어가는 해산물 냄새. 익숙한 향기는 자연스레 사람들을 이완시킨다. 그들은 그제서야 이름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출신지와 학교,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납치를 당할만한 일은 없었는지 물으며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화 내용이 조금씩 어두워질 무렵, 딜런은 축 늘어진 어인의 머리를 들어올린다.

 

 

 

“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머리도 같이 넣는 편이 좋겠어요.”

 

 

  제 고향에선 악어를 먹기도 했거든요. 얼핏 듣기엔 농담처럼 들리는 얘기다. 이 황당한 여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 여자에게로 모인다. 바다 거북의 깨진 등껍질, 거대한 문어의 잘린 다리... 그리고, 어인의 머리. 모인 군중들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달궈진 솥 위로 파충류의 머리가 떨어진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여자는 마치 토스트에 잼을 바르듯 밝은 목소리로 먼저 선수를 친다.

 

“설마, 여러분은 저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너무 거부감 가지실 필요 없어요. 저것도 그냥 동물일 뿐 일테니까. 음, 조금 괴상하긴 하지만? 너털웃음을 짓는 딜런 메이에게 마주 웃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여자는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다, 파충류의 머리를 나무 꼬치를 이용해 솥 밖으로 빼낸다. 겉만 그을린 악어의 머리에선... 부정할 수 없는 고소한 냄새가 풍기고 있다. 누군가는 여자에게 손가락질 하고, 다른 이는 입가를 손으로 틀어 막지만, 그들은 인간성을 유지하기엔 너무도 굶주렸다. 여자는 그런 이들을 예측하기라도 한 듯, 정성스레 식기를 분배하고, 문어 다리와 고기를 꿰어낸 나무 꼬치들을 식혀 다른이들의 손에 직접 쥐여준다. 매캐한 연기가 선실을 가득 메우기 전, 딜런 메이는 버너의 불을 꺼 잠시 시간을 둔다.

 

*

 

  결국 꺼림칙함보다, 끔찍함보다, 굶주림과 긴장을 녹이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모든 걸 이겨냈다. 순진하다 못해 괴상한 여자의 행동이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식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지만, 그들은 결국 고기를 한입씩 맛보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역겹진 않네. 매콤하고 짭짤한 해산물은 특정한 이들을 제외하면 누구나 맛있게 먹을만한 맛이었다. 계속해서 요리에 핀잔을 주던 데릭은 차마 아내가 해준 음식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역겨운 맛이 나더라도 맛있는 척 연기할 생각이었으나, 생각보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생리적인 거부감이 그보다 앞섰을 뿐. 인간은 익숙한 경험을 최대한 연상시키려는 습성이 있다. 데릭 역시 자신이 먹어봤던 해산물 요리와, 그 중에서도 딜런 메이의 요리 중에서 엇비슷한 걸 찾으려 노력했다. 스페인식 문어 구이와 비슷한 맛이군. 그는 꼬치를 하나 해치운 후, 식사를 마쳤다. 맥밀런 남매는 역겨워 하면서도 결국 꼬치를 들어 맛을 보았다. 그들 역시 그나마 식재료에 가까운 문어 꼬치만을 집어 들었다. 오그라든 다리들은 본래의 형체를 잃어, 관광지에서나 팔법한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역시나 맛은 나쁘지 않았기에, 젊은 청년들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이걸 정말 계속 먹어도 되는 걸까?

 

 

  마지막으로 엘런 머피는, 솥의 내용물 중 어떠한 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토마토 캔을 따서 조금씩 물처럼 마실 뿐 이었다. 딜런 메이는 부드러운 문어의 살점을 베어먹으며, 엘런 머피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의심이 많은 이들에겐 강한 권유보단 은근한 행동이 효과가 좋을 때가 많았다. 딜런은 그녀의 앞에 작게 자른 문어 꼬치를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멸하는 엘런의 시선에도 가벼운 웃음으로 대응할 뿐.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사적인 대화를 하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그녀의 남편이 딜런을 심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기에.

 

 

*

 

  데릭은 남들보다 일찍 식사를 마친 후, 아내를 데리고 복도 구석으로 걸음을 옮긴다. 진중한 남자의 눈빛은 뒤늦은 공포와 혼란으로 얼룩져있다. 그는 가족에게만 내보일 수 있는 얼굴로 빠르게 말을 이어간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요. 당신... 당신도 이 배가 익숙하진 않아요?”

 

  데릭 데버로는 고백한다. 어인의 머리를 잘라낼 때,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간 기억이 있었노라고. 그는 이 배의 구조가 유독 익숙하고, 딜런이 요리를 하는 장면 역시 꿈에서 본 것 같다고 고백한다. 딜런은 그가 축축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걸 가만히 바라본다. 데릭은 침묵하는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자신이 얼마나 미치광이처럼 보이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안경을 고쳐쓰고, 수염을 메만지던 남자는 제 풀에 지쳐 어깨를 늘어트린다. 딜런 메이는 익숙하게 데릭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품에 기대어 속삭인다. 둘은 익숙하게 서로를 껴안는다. 외진 곳에서 의지할 것은 서로 뿐 이다.

 

 

“... 내가 실언을 했군. 난 그저... ...”

“괜찮아요. 데릭. 오히려 놀랐는 걸요.”

 

 

  당신이 그렇게 예민한 기질을 갖췄는지 몰랐어요. 속삭이는 딜런의 목소리와 함께,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든다. 데릭은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느끼며 바닥이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걸 본다. 입술을 움직이려 하지만, 생각보다 몸은 강철처럼 무거워진다. 딜런 메이는 데릭이 쓰러지는 걸 겨우 붙잡는다. 힘에 부치는 모양인지 끙끙 대는 소리가 애처롭기 짝이 없다. 데릭은 안간힘을 내어 발로 벽을 찬다. 큰 소리에도 불구하고, 컨테이너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온다. 딜런은 자신의 무릎 위에 그의 머리를 얹은 채, 힘줄이 솟은 데릭의 이마를 천천히 쓸어 내린다. 여자는 이어서 몸을 숙여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딜런 메이의 시선엔 거짓이 없다. 그가 결혼하고 몇 십년동안 본 부인의 애정어린 시선이다. 그는 아내의 입맞춤을 기점으로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린다. 여자의 손이 애틋하게 그의 머리카락을 어루 만진다.

 

“걱정 하지 말아요. 곧 당신도 다 알게 될 거에요.”

 

 

그리고 아주 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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