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오늘 같은 날 비가 내리네. 유우야가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려놓고 핸들을 톡톡 두드리면서 청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와이퍼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앞유리의 물기를 닦아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해를 가리고 있던 두터운 먹구름은 저녁이 되고도 도통 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며칠 전부터 계속 오늘의 일기예보를 체크했지만, 처음에는 40%였던 강수확률은 떨어지기는 커녕 차츰 올라가더니 오늘로 넘어오는 자정에는 80%를 찍었고, 지금은 부슬비가 내리는 신세다. 다행히 예상 강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간신히 폭우를 면했을 뿐. 우산 없이는 길을 걸을 수 없는 그런 날씨였다.

신이 물었다.

"신경 쓰여?"

"뭐가?"

"날씨."

와이퍼가 양쪽으로 움직이면서 커다란 물자국을 만들었다.

"비가 안 왔으면 더 좋았겠다 싶지."

"그걸로 끝?"

"그렇게 안 보였어?"

유우야는 답을 구하듯 룸미러로 시선을 옮겼다. 거울을 올려다보는 자신의 얼굴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자기자신과 눈을 마주친 뒤에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신은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턱을 괴었다. 유리창에 비치는 신의 얼굴 위로 빗방울이 새롭게 맺히고 있었다.

"당신은 비만 오면 괜히 신경쓰잖아."

"그야 오늘은…."

그가 쉽사리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사이에 신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무슨 상관이야. 실내로 들어갈 건데."

아닌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지금 가는 곳은 지하주차장에서 건물 내부로 이어져있었다. 더해서 신은 그날의 기상 현상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유우야는 신이 순전히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유우야가 멋쩍은 얼굴로 웃는 모습도 차창에 비쳤다.

곧 신호가 바뀌어 유우야는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옆을 보면 번듯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그가 대답을 망설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야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그런 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기리 유우야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랐다. 특별한 날이 맞기는 한데, 이 특별함이 어디에서부터 온 건지 도통 가늠이 되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생일이 아닌 날에 덜컥 건네진 생일 선물 같았다.

'정작 생일이 다가오는 건 넌데 말이지.'

좌회전을 하자마자 오늘이 단 7일간 진행되는 세일의 마지막날이라고 홍보하는 커다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신이 오늘 약속을 제안한 것도 딱 일주일 전이었다.

그때 유우야는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라 보더와 직장에 인사를 돌리고 여기저기 연락을 돌린다고 한창 정신이 없었는데, 보더 본부의 복도에서 신과 마주치자마자 그가 유우야를 불러세운 것이다.

"당신, 다음주 목요일에 뭐 해?"

"다음주 목요일? 아무것도 없어."

발테기온으로 향하는 원정에 가기 전까지, 두 사람은 일을 마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집에 들러서 자고 가는 날이 많아졌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는 자그만치 한 달하고도 반을 매일같이 붙어지냈지만, 그런다고 예전 습관이 어디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더 아쉬워졌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한 유우야는 슬쩍 웃으면서 물었다.

"왜? 놀러오려고?"

"그건 아니고…."

"그럼?"

"밥 먹으러 가자고."

"밥?"

되묻는 유우야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실렸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이상하기는 했다. 집에 가려면 당장 오늘도 가도 되는데 굳이 일주일 뒤를 선점할 게 뭐란 말인가. 일 가기 전에 동네 밥집이라도 들렀다 가자는 건가, 싶으면 그날은 유우야가 일하는 날도 아니었다. 신이 일하는 날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밥 한끼 같이 먹겠다고 신이 자신을 밖으로 불러내는 것도 쉽게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무슨 밥?"

유우야의 물음에 신은 괜히 자신의 뒷목을 쓸다가 말했다.

"뭐, 무슨…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어. 먹을 거야, 말 거야."

"나야 좋지, 비워둘게. 식당은 여기서 가까워?"

"좀 걸려."

"그럼 내 차 타고 가자. 언제까지 가면 돼?"

신은 잠깐 생각하고는 금방 대답했다.

"여섯시 쯤."

"알았어."

유우야는 꽤나 선선히 답이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파인 다이닝? 제안을 승낙하면서도 얼떨떨한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카키바라 신이다. 그와 오래 지내면서 유우야도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뭔가를 물을 새도 없이 다른 보더 후배가 말을 걸어왔고, 신은 볼일을 보라는 듯이 손을 휘젓고는 자리를 떴다. 선배, 코게츠 말인데요…. 응. 상냥한 하기리 선배가 어떻게 그 질문을 무시하고 신을 쫓아가랴. 그렇게 유우야는 신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유우야는 오늘이 오기까지 종종 신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무슨 날인가?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미카게 시에 돌아오자마자 같이 식사를 하러 갈 이유가 뭐가 있지?

그 의문은 약속 당일까지도 해소되지 않았다. 물론 정말 궁금했다면 신에게 물어보면 됐겠지만 많이 바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는 선물 상자의 리본을 풀기도 전에 안에 뭐가 들었냐고 성급하게 묻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약속한 목요일 오후. 평소에 일할 때 입는 복장에서 재킷까지 갖춰 입은 유우야는 익숙하게 신의 집 앞까지 갔다가 한 번 더 놀라게 됐다. 신이 양복을 입고 나온 것이다. 미리 차에서 내려 우산을 들고 있던 유우야는 신이 낯선 옷차림으로 나오자 놀라면서도 그를 데리고 차로 돌아왔다. 신이 비라도 맞을세라 우산을 기울인 통에 유우야의 어깻죽지가 조금 축축해졌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잘 어울려. 집에 이런 옷이 있었던가? 아니, 샀어. 근사한 곳에서 밥 먹어야 해서? 유우야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신이 그를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응. 이런 순간에 유우야는 말이 없어진다. 신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당신은 오늘 머리 안 넘겼네. 아아, 뭐. 얼마 전에 있어 보이려고 노력했다가 왕창 깨지는 바람에 헤어 스타일까지 멋내는 건 관뒀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이제 이 앞에서 좌회전해서 조금 더 가면 식당이야."

하기리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신이 정면을 바라봤다. 레스토랑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신의 옷차림에 적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 유우야는 운전 도중에도 조수석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좋아서, 라는 답이 돌아오자 신은 "참나."라고 일갈했을 뿐,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차에서 내려서 엘리베이터에 탈 때까지 다른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유우야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의 옷 매무새를 잘 정돈해주었다. 학교 다닐 때도 후드 위에 교복 재킷을 걸치던 남자가 어디 가진 않아서 신은 정장 차림을 답답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유우야가 자신의 겉옷을 가지런히 만지도록 내버려두었는데, 유우야는 다 됐다, 하고 손을 떼면서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내리자마자 카운터에 서있던 직원이 다가와 손을 모으고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예약하셨을까요?"

"일곱 시. 사카키바라 신."

"두 분 맞으시죠. 사카키바라 님, 이쪽입니다."

신이 그를 돌아보고 말했다.

"가자."

신은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었다. 강렬한 데자뷰가 유우야의 등 뒤로 따라붙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식사를 제안한 것도, 생각지도 못한 차림새로 그를 놀래킨 것도 전부 자신이 아니라 신이라는 점이었다.

마음이 간질간질하니 이상한 기분이다.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랬었지. 오늘 정말 무슨 날인 거지. 유우야가 걸음을 서둘렀다.

* * *

"다섯 번째 메뉴로 안심 스테이크 준비해드렸습니다. 굽기는 두 분 모두 미디움 웰던으로 구워드렸어요. 저희 레스토랑에서는 와규를 4주간 습식과 건식으로 교차 숙성하는데요, 오늘 준비된 스테이크는 그렇게 숙성한 와규 안심에 소금을 발라 숯불에 구워 내드렸습니다."

"옆쪽은 스테이크와 함께 구운 마늘을 넣은 시금치 퓨레고요, 여섯 시간 이상 캐러멜라이징한 양파잼과 샬롯 피클, 그리고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함께 곁들였습니다."

"같이 준비된 포트와인 소스는 진하게 졸여낸 브라운 비프 스톡과 포트 와인, 쉐리 와인 식초를 첨가하여 만든 소스로, 찍어서 드시면 깊은 풍미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페어링으로 나온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이었다. 서버가 와인을 따르는 동안 유우야가 이 와인은 고기와도 소스와도 잘 어울릴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서버가 웃으면서 말했다. 술에 대해 잘 아시네요. 아, 바텐더 일을 하고 있어서요. 그러시군요.

그가 서빙을 마치고 방을 떠나자 유우야가 물이 든 잔을 들었다. 신은 와인잔을 들고 그의 잔에 가볍게 부딪쳤다. 아까부터 유우야는 차를 끌고 온 자의 숙명으로 와인 대신 물을 마시고 있었다. 이것조차 예전과 똑같았다.

유우야는 코스 요리에 와인을 곁들이는 걸 좋아했지만, 그 이상으로 애인을 차에 태워주고 싶었으므로 신을 옆자리에 앉히고 온 걸 생각하면 손에 들린 투명한 물잔이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이 와인도 고기 구울 때 쓰는 일 있던가?"

"쓸 수는 있는데 굳이. 비싼 술은 요리에 써봤자잖아."

"하긴."

"가게에서는 주로 쓰는 건 메를로나 키안티."

유우야는 스테이크를 썰면서 물었다.

"교차 숙성은 왜 하는 거야?"

"그래야 이런 식감이 되거든."

신이 그 말을 한 건 유우야가 방금 썬 안심을 막 입에 넣었을 때였다. 씹을 때마다 고기의 바삭한 겉과 적당히 배어나오는 핏물로 촉촉하게 구워진 안쪽의 식감이 느껴졌다.

"건식 숙성을 오래 하면 고기가 마르니까 습식 숙성을 같이 하는 거야."

"아하."

신은 고기를 큼직하게 썰어서 옆의 시금치 퓨레를 듬뿍 묻히고는 입 안에 넣고 씹었다. 웰컴 푸드 다음으로 나왔던 음식을 먹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두 번째로 나온 메뉴는 얇게 구운 새우 과자 아래에 숯불에 살짝 구운 홍새우와 토마토, 샤인머스캣, 망고와 치폴레 아이올리를 넣어두고 과자 위에는 붉은색 꽃잎 하나를 올려준 음식이었는데, 숟가락으로 과자를 깨뜨린 뒤에 밑까지 함께 떠서 먹는 방식이었다. 맛은 있었지만 과자와 해산물, 과일의 식감이 뒤섞여 무슨 맛이었다고 똑부러지게 설명하기 어려운 맛이 났다. 그에 비하면 고기는 야채와 소스를 곁들여 나왔을 뿐, 나이프로 잘라서 먹으면 그만이다. 스테이크야말로 직관적인 음식이다.

"관자 요리도 맛있었지만, 역시 스테이크가 메인 요리란 느낌이네."

신이 짧게 긍정했다.

"잘 구웠네."

"아."

"왜?"

고개를 살짝 돌리고 냅킨을 입가에 누르던 유우야가 짧게 감탄하자 신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우야가 웃으면서 고갯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밖에 비 그쳤나봐. 저 밑에 사람들이 우산 안 쓰고 걸어다니는 거 보이지?"

"아, 뭐. 아까 도착했을 때도 빗발 약해지던데. 이제 그쳤나."

"응. 덕분에 밖이 더 잘 보이네."

새로 연 레스토랑은 예전에 두 사람이 간 곳만큼 고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높아서 미카게 시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해가 지자 곳곳을 장식한 주황색 불빛도 눈에 띄었다. 할로윈 호박 장식이었다.

몇 년 전에 다른 식당을 찾았을 때는 정리가 늦어진 철지난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눈꽃 조명 같은 게 보였더랬다.

그 해의 신년, 유우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고 신을 마중나갔다. 곧 카르페디엠을 관두기로 결정한 신에게 '남은 시일 동안 자신의 얼굴을 안 보고 지낼 수 있는 특권'을 걸고 거래까지 해가면서 얻은 식사 약속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중에 데이트를 하자는 말에 신이 순순히 그러자고 받아줄 리가 없었다. 더는 보지 않기 위해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 자리를 갖자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유우야는 곧 가게를 떠날 신에게 이별 선물 하나는 주고 싶었다. 가게 주방에 남겨질 커다란 크리스마스 선물 말고, 좀 더 오래 사카키바라 신이라는 인간에게 남을. 이 남자애는 요리하는 걸 꽤나 좋아하는 것 같았고, 그런 신이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을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고른 게 41층 레스토랑에서의 값비싼 식사였다.

사이가 나빴던 만큼 잠깐의 휴전으로 동행한 식당에서도 두 사람의 대화는 아슬아슬하게 오가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유우야는 지금도 그날 후드를 입고 제 맞은편에 앉아있던 신의 모습을 꽤나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런 코스 요리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제는 안다. 그렇지만 아직은 묻고 싶지 않았다.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우수아이아에 도착하기까지 신이 그를 가만 둔 것처럼 유우야는 질문을 뒤로 좀 더 미루기로 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이 특별한 이벤트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오늘 먹은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음식은?"

어차피 후식으로 나온다는 요거트 무스와 퓨레는 신의 결론을 뒤집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유우야는 디저트가 나오기 전에 일찍 그에게 물었다. 신은 별 고민 없이 금세 대답했다.

"안심 스테이크."

"하하. 나도."

* * *

밤의 도로는 오가는 차도 없이 시원스레 뚫려 있었다. 유우야는 타이밍 좋게 파란불로 바뀐 신호등 밑을 달리면서 물었다.

"예전에 내가 너한테 머리 자르지 말라고 했었던 거 기억나?"

신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와이셔츠의 단추에 손을 가져갔다. 이것도 신 치고는 오래 버틴 신기록이다.

"그랬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왜?"

"그거, 네가 요리할 때 불편해서 머리를 길렀다길래 그만두지 않았으면 해서 했던 말이었는데."

"당신은 가만 보면 항상 이상한 걸 신경써."

신이 조수석 시트에 몸을 기대면서 대답했다.

"내가 뭐? 네가 카르페디엠을 그만두고 아예 요리도 접어버릴까봐 걱정돼서 그랬던 거지."

"관두면 뭐 어때서. 아르바이트도 요리만 한 건 아니었다니까."

"그래도. 좋아하는 것 같았거든."

유우야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

신은 운전을 하는 유우야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지금은 아니고?"

"지금도 물론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그러면서 뭘."

"그때는 그냥…."

"그냥 뭐?"

"네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신경쓰던 때니까."

"신경이 쓰여서 한 말이 머리를 자르지 말라는 거야?"

신이 가벼운 어조로 응수했다. 그러자 유우야가 작게 웃었다.

"응. 미안해. 그 뒤로도 유치하게 굴어서."

"……."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신호등 아래로 빗물에 젖어 반들거리는 땅이 붉게 빛났다. 여태 도로를 바라보던 유우야는 고개를 돌려 신을 쳐다보았고, 이내 어이없다는 얼굴과 마주치게 됐다. 아, 이런 얼굴? 그 시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유우야는 자주 미안해하는 얼굴을 했지만, 지금은 그저 부드럽게 웃을 뿐이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신이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당신이랑 밥을 먹었을 때는, 당신이랑 헤어질 생각밖에 안했어."

"그런가."

"그래서 이번에 같이 가자고 한 거야. 이번엔 다를까 해서."

신호등이 파랗게 바뀌었다. 그러나 앞에도 뒤에도 차는 없었다. 유우야는 차를 다시 출발 시키기 전에 신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어땠어? 다른 것 같아?"

"하늘과 땅 차이 아닌가."

"…하하."

차가 움직이면서 물소리가 났다. 종일 우중충했던 날씨도 이제는 그렇게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늘은 아무런 날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비가 내린 목요일이었을 뿐이다. 오늘이 어떤 날이라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예약한다는 건 그야말로 자기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니 좀 우스웠다. 그는 이미 예전에 아무것도 아닌 날을 신과 식사하는 날로 만든 적도 있었고, 별일이 없어도 같이 밥 정도는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얘기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대답 하나에 뭐 그리 망설였는지.

그래도 예전처럼 한 번 더 밥을 먹겠다는 생각을 자신은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이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고, 신만이 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오늘 하루를 특별한 날로 만들어준 것도 신이다. 유우야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오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난 그날 분위기 꽤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심이야?"

"하하."

한 방 먹은 것까지 합해서 최고의 디너였다. 그의 마음이 기뻤던 탓에, 억지로 이런 곳에 올 필요는 없었다는 말은 도무지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천천히 나오는 디쉬며 몇 입 먹으면 끝나는 음식이 신에게 맞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자신을 위해서 평소에는 찾아보지도 않았을 식당을 예약하고 어디서 정장을 맞춰 사왔을걸 생각하면 그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남미에서 신에게 이런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거라고 하면 과연 믿을지 모르겠다.

"역시 난 신을 좋아해."

유우야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한테라면 뭐든 다 해주고 싶을 만큼."

"그러니까, 그런 건 됐다니까."

예상 범위 내의 답변이 돌아왔다. 신만큼 그런 게 필요없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는 유우야가 뭐든 자신에게 내주는 걸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걸 알면서도 유우야는 신에게 자꾸만 뭐든 주고 싶었다. 돌아보면 정말 자신을 좋아하는 건 손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을 때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든가.

과거에 두 사람을 보더로 데려갔던 차는 오늘은 다른 길로 빠진다. 유우야는 한때 위치조차 모르던 신의 집을 향해 익숙하게 차를 운전했다. 아직도 정장 차림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조수석에 편하게 앉아있을 애인 생각을 하면 역시 와인이 아깝지 않다. 이 다음에는 더 낮은 테이블에 음식을 올려놓고 같이 맥주라도 마실 생각이다.

* * *

신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신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들었나? 유우야는 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어딘가 매서운 인상이다. 그는 늘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 아닐 때도 있었는데, 예전에 식당에서 돌아온 날에 보더 주차장에 서서 그가 말했을 때가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로…. 그냥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그때의 자신은 무슨 자신감인지 그의 말을 덜컥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로 들었더랬다. 거래가 있지 않고서야 밥 한끼조차 상을 공유할 이유가 없던 사이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이제 자리가 바뀌어, 신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건 유우야의 몫이 되었다. 그를 좋아하기에 실수한다. 신이 화를 내는 걸 보면서 몇 번이고 고민한다. 노력한다. 모든 문제를 단순히 자신이 변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아는데도… 너무 오래 이렇게 살아오고 만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이 사실이 유우야에게 주어진 평생의 과제였다.

'하지만,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해줬지.'

그렇기에 그날과는 다르다.

유우야는 신이 깨어나면 괜한 핑계를 대면서 오늘은 재워달라고 할 속셈이다. 마칠 내일은 방위훈련도 없고, 일도 없으니까. 차창 너머로 신의 목소리를 새겨듣던 그날보다 오늘 훨씬 더 그를 좋아하고 있다.

운전석의 안전벨트를 푼 유우야는 조금 더 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 시간을 만끽하다가, 그가 더 편히 앉아있을 수 있도록 손을 뻗어 조수석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 그쪽으로 몸을 숙이자 신의 얼굴이 보다 가까워졌다.

무심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신이 눈을 떴다.

"깼어?"

"……."

반뼘 거리의 보라색 눈과 눈이 마주치자 유우야는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는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아, 이건. 그러니까."

이상하다. 내려서 문을 열어주려 그랬는데. 그럼 나는 신을 기다리고, 문을 닫아주고, 같이 집으로 들어가고…….

신과 같이 있다 보면 유우야의 예상은 5분 단위로 엎어지기 일쑤였다. 그가 뭐라고 더 변명을 이어가기도 전에 신이 멀어지는 유우야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앗."

유우야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이러는데 같을 수가 있나. 역시 그럴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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