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케이든은 요즘 먹고 싶은 음식 있어요?" 케이든의 집 거실에서 미나가 대뜸 물었다. 때마침 티비에 최근 인기 좋은 밀키트 광고가 지나가던 참이었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밝고 화려한 포장을 두른 포장지 디자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케이든이 생각해 보다 대답했다. "나...? 따로 없는데." 편식을 하거나, 까탈스러운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묻는 이유가 있는 법. 케이든이 티비 대신 미나를 보며 반문했다. "미나는 뭔가 먹고 싶은 거 있어?" 기다렸다는 듯이 미나가 그의 방향으로 몸을 살짝 숙였다. "그게 말이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작아진 목소리에 자연히 케이든도 진지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비프 카레요." 그렇게 툭, 조심스레 내뱉은 음식에 케이든이 표정으로 물음표를 띄웠다. 비프 카레는 특별히 귀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음식이니까. 흡사 귀중품이라도 꺼내듯이 조용히 말할만한 메뉴는 아닌 것이다. 미나가 그의 표정을 읽고 짧게 웃었다. "비프 카레?" "네, 비프 카레." "왜 비프 카레인데?" 카레라는 단어를 너무 여러 번 주고받았더니, 순식간에 어감을 혀에서 굴리는 일까지 어색해졌다. 그리고 이 비프 부분 중요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미나가 시무룩하게 쿠션을 끌어안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건 말이에요. 얼마 전에 티비 광고를 봤는데, 거기에 카레가 나오는 거예요. 혹시 보신 적 있어요? 요즘 인기 좋던데." 랄라라, 하는 노래가 나오는 광고요. 미나의 흥얼거림에 케이든도 어렵잖게 광고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사과와 벌꿀이 들어갔다고 하는 옛날식 레토르트 카레. "그걸 보니까 엄청 카레가 먹고 싶어 진 거 있죠." "그런데 못 먹었어...?" "네! 먹고 싶어서 슬쩍, 대학 식당에도 들러봤는데 말이에요. 학식은 며칠 동안 런치 메뉴에 카레가 없고, 가게는 가본 곳마다 어째선지 휴무일인 거 있죠?" "저런..." "심지어는 이럴 거면 만들어 먹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마트에 갔는데요!" 분한 듯 쿠션을 내리치는 모습에 케이든은 이어질 대답을 어쩐지 짐작할 수 있었다. 미나가 슬프게 쿠션을 다시 끌어안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마침 고체 카레가 품절인거예요…" "그건...운이 없네." "정말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카레가 너무 먹고 싶어요."
먹고 싶은 메뉴를 연달아 단념해야 하는 연이은 현상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단순한 불운으로 부르기엔 미나의 얼굴이 영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인재는 해결하는 법 또한 쉽다. "그럼 내가 만들어줄까." 마침 저녁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 남아있기도 하고. 본래 배달을 시킬 생각이었지만, 그래야 한다고 정해진 건 아니었다. 카레는 손이 많이 가는 메뉴도 아니고. 그나마 문제가 있다면 나머지 초대객들의 의견을 구하는 일 정도. 유릭과 세실, 둘 다 음식에 그리 까탈스럽지 않으니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그 순간, 둘의 핸드폰에 동시에 알림이 울렸다. 세실에게서 온 메세지였다. [카레 좋아요.] 케이든의 집은 가족과 함께 사는 아파트였다. 대학생들의 단칸방 마냥 방음이 나쁘지도 않고, 애초에 몇 집 건너에 사는 세실에게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릴 일도 없었다. 그런데 그가 어째서 둘의 대답에 실시간으로 끼어들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엿듣지 말고...세실도 미리 오라고 했잖아." 케이든이 핸드폰에 대고 말해보았다. 변변한 대답도 아닌, 입을 다문 기본 이모티콘이 곧잘 채팅방에 올라왔다. 케이든은 이모티콘으로 대답했고, 미나는 그냥 웃어버렸다. 넷, 아니, 셋의 문제는 그의 비정상적인 기행을 지나치게 너그럽게 받아준다는 데에 있었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던 교류는 이따금 이렇게 기묘한 형태를 띠곤 했다. 케이든이 혼내는 듯한 이모티콘을 하나 더 보내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세실은 좋대." "그럼 유릭 씨 의견만 기다리면 되겠네요." 아마 거절하지 않을 마지막 한 명의 답을 기다리며 미나가 먼저 겉옷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된 거구나. 갑자기 카레라고 해서 뭔가 했어." 원래 집으로 올 예정이던 유릭이지만, 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에서 모이게 되었다. 마트 카트를 끌며 걷는 유릭 옆에서 미나가 민망하게 웃었다. "갑작스러웠죠…! 수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려운 일도 아닌걸." "그래도요. 왠지 전부 끌어들인 느낌." "카레는 맛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그런 의미를 담아 대답하며, 케이든이 익숙하게 카레 재료를 카트에 담았다. 양파, 감자와 당근 같은 친숙한 재료들을 담는 케이든을 보며 유릭이 물었다. "그런데 세실은?" "귀찮대요." "집에 계시겠다고 하셔서." "그렇구나." 한 명의 부재에도 불구, 잔소리가 적은 세 사람의 대화가 평화롭게 이어졌다. "그런데, 야채는 이것만 사는 거야?" "뭔가 더 필요해요?" "토마토라던가." "넣으면 맛있긴 하지. 넣을까..." "아니면, 고구마 같은 거." "고구마를 넣은 카레는 처음 들어봐요!" "사실 나도 넣어본 적은 없어." "그럼…" 왜… 라고 덧붙여 묻기 전, 케이든이 과거의 대화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유릭의 요리 솜씨는 분명. "그러고 보니까 요리는 늘었어요?" "으음~." 유릭이 가만히 웃었다. 이제 미나도 언젠가 먹었던 타버린 음식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가 야채들을 지나 레토르트 식품이 늘어진 매대로 향하며 대화 주제를 돌렸다.
"유릭 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 나는 항상 비슷하지." "그럼, 새 취미라던가." "요즘은 식물을 키워. 다육 식물들." 계절이 바뀌는 속도만큼 빠르게 변하는 것이 유릭의 취미 생활이다. 손을 거쳐 흘러간 자잘한 취미들이 몇 개나 되는지 다 헤아릴 수도 없다. 미나는 예전에 키우던 해수어라던가, 사놓고 방치하던 택배들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인간을 제외한 생명 돌보기와 거리가 먼 케이든이 질문했다. "키울 만 해요?" "그렇게 어렵지 않아. 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괜찮고." "이름이라던가, 붙이셨어요?" "딱히 붙이진 않았어." 몇 달이나 갈지 알 수 없는 취미에 그 정도의 코스트를 들일 이유는 없다. 그래도 왠지 아쉽다는 표정을 짓자 유릭이 미나를 바라보았다. "지어줘도 돼." "어떤 애들이 있는데요?" "사진을 찍어둔 게 없어서. 전부 네 개야." "많네요..." "생각해 볼게요."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걷던 미나가 문득, 매대를 돌기 전에 웅얼거렸다. "그런데 여기에도 카레가 없으면 어떡하죠..." 그의 불운에 대해 전부 전해 듣지는 못한 유릭이 태평하게 대답했다. "카레는 인기 상품이니까 항상 있지 않아?" 그리고 케이든이 미나 대신 대답했다. "저번에 갔을 때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셋을 반겨준 건 파스타 소스들이었다. 그 반대편에 늘어진 상자들 사이에 카레가 진열되어 있을 것이다. 빨갛고 하얀 소스 병들을 지나며 미나가 차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에 오늘도 없으면…" 주먹 쥔 손을 보고 있노라면, 쓸데없는 생각 중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유릭이 가벼운 태도로 다시 끼어들었다. "다음에 또 모여서 먹으면 되지." "그렇지…" 아주 사소한 약속. 그러나 또한 미래의 이야기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해산되고도 이어지고 있는 지금의 관계 같이. 미나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물이라도 건네받은 사람처럼. 케이든이 그런 미나를 보다가 손을 들었다. "미나, 저기." "와아!"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는 카레에게 배신당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소파에 누워있던 세실이 고개만 움직여 세 사람에게 인사했다. 양손 가득 묵직한 장바구니 탓에 셋 다 약간은 지친 표정이었다. "뭘 그렇게 많이 샀어요." "카레 재료랑, 음료수랑, 과자랑." "케이크도 사 왔어요!" 미나가 봉지 하나를 들어 올리자, 세실이 자세를 한 번 고쳐 앉았다. 고양이를 먹이로 꾀어내는 익숙한 기분. 불투명한 봉지 안에 어떤 맛의 케이크가 들었는지 가늠해 보듯 세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제 거예요?" "응. 단 거 좋아하잖아." "몇 개?" "한 사람 당 한 개." "지금 먹을래요." 드문 잔소리가 이어졌다. "밥 먹고 먹어. 입맛 없어지잖아." 십 대를 훌쩍 넘다 못해, 이십 대 후반을 달리는 청년이 들을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작게 혀 차는 소리만 들려왔다. 유릭이 두 사람을 도와 야채들을 꺼내며 덧붙였다. "대신 내 것도 줄게." "유릭이 고른 케이크는 무슨 맛인데요?" "초콜릿이었던가." "좋아요." 오늘은 초콜릿의 기분이었을까. 다시 만족한 표정으로 소파에 기대는 세실을 자연스레 제외한 채 요리 준비가 시작되었다.
어려울 것 없는 준비인 만큼, 재료 손질은 대체로 차질 없이 이뤄졌다. 그러니까, 이따금 유릭을 향해 쏟아지는 걱정스러운 시선들을 제외한다면. "칼 조심하세요!" "필러도 조심해요." "감자 필러라는 거, 날붙이란 사실을 가끔 잊어버리지 않아요?" 유릭은 자신 있게 대답하는 대신 질문의 화제를 돌렸다. "잊어버린 적 있어?" 그렇게 하면 두 사람은 곧잘 새로운 소재로 주의가 옮겨가 버린다. "예전에 감자를 깎다가 베인 적 있어요." "아팠겠네..." "그때 아, 이것도 날이 있는 도구구나, 하고 새삼 생각한 거 있죠."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다행이네." "네에, 피만 좀 났으니까." 미나가 이 손가락이었어요, 하고 검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흔적도 남지 않은 손가락을 보며 케이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대로 껍질을 벗긴 감자를 쥐고 칼을 들던 케이든이 물었다. "재료는 크게 자르는 게 좋아?" "그게 식감은…앗." 대답하던 미나의 시선이 잠시 도마 위를 배회하다가 흔들렸다. "작은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시선의 끝에는 깎여나가 작아진 유릭의 재료들이 놓여있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따라간 케이든이 아, 하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작게, 알았어." 묵묵한 손질이 이어졌다. 대답의 당사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한 사람은 모르는 채로 눈치 빠른 두 사람의 시선 교환이 그다음에도 두어 번 더 이어진 끝에 이러나저러나 모든 재료 준비가 끝났다. 프랩을 마치고 정돈되어 늘어놓은 재료들을 보니 제법 요리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났다. 채썰어진 양파와 양송이버섯, 다이스로 썰린 감자와 토마토가 오와 열을 맞춰 트레이에 담겨 있었다. 사과는 미나의 킥, 고구마 대신 선택된 셀러리는 유릭의 추천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은 옛날부터 카레에 셀러리를 넣었거든. 맛으로는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일종의 추억의 재료였다는 느낌의 추천이었다. 준비된 재료들은 하나씩 보자면 유릭이 손댄 것들과 케이든이 미처 수습하지 못한 재료들이 뒤섞여 크기가 제각각이었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조금의 과장을 더 해 요리 잡지의 삽화를 보는 기분까지 들어 어쩐지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케이든이 고기와 채소들을 볶을만한 프라이팬과 냄비를 찾는 동안 미나는 핏물을 빼기 위해 잠시 물에 담가두었던 부채살을 키친타올 위에 건져놓았다. 손을 씻고 돌아온 유릭은 앞치마에 물기를 닦으며 여전히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작은 드론으로 화면을 띄워두고 있는 세실의 곁으로 다가갔다. 재료를 써는 동안 타이밍 좋게 순서나 방법에 대한 지극히 검색을 기반으로 한 훈수가 날라왔기 때문에 다음 레시피를 확인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실의 화면은 이미 비프카레의 효능으로 넘어간 후였다. 비프카레의 효능… 화면의 문자들에 자신도 모르게 주의가 끌린 사이 두 개의 깊은 팬을 찾아 화구에 올려놓은 케이든이 말했다.
“그러면 이제 고기랑 채소는 나눠서 볶을까?”
“네, 좋아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유릭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세실의 어깨를 가볍게 잡자 의욕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표정으로 유릭을 올려다보았다. 유릭은 세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대충 예상은 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나도 할게. 세실도 이제 그만 관전하고 슬슬 참여해 줘.”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나도 그렇다고?”
“알고 있었구나…….”
케이든의 묘한 감탄을 배경으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세실의 팔을 잡아 화구까지 끌고 온 유릭은 담담한 자기 고백과는 또 별개로 제법 의욕적이었다. 이 일상적인 이벤트가 그의 마음에는 꽤 들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취미로 요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당연히 반대에 부딪힐 말은 하지 않을 정도의 이성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요리라는 기능이 없는 두 사람의 곁으론 미나가 붙었다. 케이든은 키친타올로 고기를 누르며 남아있던 물기를 제거했다. 3대 1이라는 묘하게 치중되어 있지만 균형이 있는 인원 배분이었다. 적당한 굽기가 필요한 고기는 케이든이, 양이 많은 양파와 나머지 채소들은 세 사람이 볶기로 했다. 사람이 많으니 적당히 떨어진 화구 앞에 자리를 잡았다.
“불을 쓰니까 진짜 요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요리라면 계속하고 있었는데도요?”
“그러니까 진짜 요리 같은 느낌이.”
“가짜 요리도 있는 거예요?”
“샐러드 같은 건 가짜 요리 같지 않아?”
무슨 느낌인지는 알 것 같다… 미나가 팬에 버터 한 덩어리를 넣어주며 미묘하게 설득되는 동안 세실은 썰어둔 야채들을 담아둔 트레이를 들고 있었다. 버터는 서서히 열을 받은 팬의 중앙에서 천천히 녹아갔다. 유릭은 손잡이를 들고 팬을 흔들어 녹은 버터를 고루 펼쳤다.
“그냥 다 넣어버리고 휘리릭 볶아버리면 되는 건가?”
“양파는 먼저 카라멜라이징을 해야 한대요.”
“카라멜라이징…….”
“갈색빛이 돌 때까지 볶는 건데, 왜 그렇게 단어를 처음 배운 괴물처럼 말하는 거죠.”
다른 화구 앞에서 팬이 달궈지는 것을 기다리던 케이든이 결국 못 참고 물었다. 유릭은 머릿속으로 단어에 대해서 좀 더 곱씹는 듯했지만 그럴듯한 답은 찾지 못한 것 같았다. 미나가 이제 넣어야 한다고 말하자 세실이 들고 있던 트레이를 기울였다. 기울어진 트레이에서 절반 정도를 차지한 양파를 쓸어내 팬에 넣으며 마저 의문을 이어 나갔다.
“카라멜은 카라멜이고 양파는 양파잖아.”
“양파는 열을 가하면 단맛이 나니까요!”
“에, 그랬던가.”
“카라멜이라는 건 당이 졸아서 만들어진 걸 지칭하는 단어라는 걸 아시나요.”
“처음 알았어. 세실은 왜 알고 있는 거야?”
“예전에 어쩌다 보니… ….”
“채소의 볶아서 나오는 단맛이라는 거, 살면서 딱히 인식해 본 적 없을지도.”
등 뒤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케이든은 고기를 달궈진 팬에 투하했다. 곧바로 열을 받으며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고, 겉면의 색이 변하는 것을 기다리며 소금과 후추로 약간의 간을 했다. 순조롭게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유릭은 나무 주걱으로 양파를 휘저었다. 버터와 고기의 고소한 냄새가 사방을 채웠다. 그야말로 평화롭고 풍요로워지는 듯한 향기였다. 다만 양파의 색이 그렇게 금방 바뀌지 않았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고기와는 달리 양파의 색이 금방 변하지 않자 답답했는지 유릭이 불의 세기를 올렸다. 후끈한 열기에 이제야 만족했다는 표정을 한 유릭의 얼굴을 살피던 미나가 다시 슬며시 온도를 낮췄다. 이 상황을 진작에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보조였다. 유릭은 여전히 영문을 모를 표정으로 미나를 쳐다보았다.
“센불로 하면 무조건 좋은 거 아니야?”
“불이 너무 세면 익기 전에 겉만 타버리는걸요.”
요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 그린 듯한 요리치에게 불의 온도가 식재료에 주는 영향이나,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바닥에 눌어붙는다든가 하는 요리의 세세하고 번거로우면서도 섬세한 과정들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세실은 요리 과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욕이 낮았고, 유릭은 고집이 세지 않다는 것만이 다행인 점이었다. 요리치들이 요리를 망치는 가장 티피컬한 이유는 레시피를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으니까. 유릭은 그 이후로도 순순히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고 미나가 맞춰준 온도를 유지하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양파를 휘저었다.
“나 어쩐지 제대로 아는 게 없네.”
“솔은 요리를 못하니까요.”
“잠깐. 인정하는 바이지만 세실에게 듣고 싶지는 않아.”
“사실인 데도요.”
“나한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고. 세실은 알고 있었어?”
“이론적으로는.”
“거짓말.”
인내심을 가지고 볶자 서서히 양파의 색이 황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미나가 손짓하자 세실이 다시 들고 있던 트레이를 기울였다. 단단한 채소부터 무른 순으로. 미나가 감자와 당근을 양파를 볶던 팬에 넣는 동안에도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던 유릭이 살짝 고개를 뒤로 젖히며 물었다.
“케이든은 알고 있었어?”
“네. 알고는 있었는데… ….”
휘젓고 있던 주걱과 쏟아지던 당근이 부딪혀 팬을 탈출하는 바람에 미나와 유릭은 애매하게 끝맺음 된 케이든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두 사람이 열심히 다시 당근을 주워 담는 동안 세실이 떨어진 케이든을 바라보았다.
“아.”
케이든은 젓가락으로 새까맣게 탄 고기 한 점을 들고 있었다. 팬에 있는 고기를 보면 멀쩡했으므로 불 조절의 실패로 발생한 참사라는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세실은 케이든의 얼굴 위로 떠오른 난처함과 어쩐지 조금 곤두세워져 있는 뒤통수 쪽의 머리카락을 보고 조용히 깨달았다.
“전자레인지의 원리……”
“……조용히 해주세요.”
이 작은 해프닝은 세실의 묵인으로 두 사람만의 비밀로 남을 수 있었다.
적당히 구워진 고기와 어느 정도 볶아진 채소를 냄비에 넣고 물을 붓는다. 고형카레를 넣고 푹 끓이면 카레는 완성이다. 바닥에 재료들이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오래 끓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지만, 당근이나 감자 같은 단단한 채소들이 다 익을 정도만 되어도 먹을 수 있다. 어째서인지 마지막 과정에서 냄비를 계속 젓는 역할을 맡은 것은 세실이다. 케이든과 미나는 뒷정리를, 유릭은 카레를 담을 식기를 꺼내고 있었다. 세실은 언제나와 같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그가 지금 불만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 사람 모두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식기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무성으로 항의 중인 세실을 보며 말했다.
“내 앞치마라도 벗어줄까?”
“대신 해주면 안 되는 건가요.”
“다 같이 만드는 요리니까, 세실도 뭔가 하나 해야지.”
“트레이 들고 있었는데요.”
“직접 만든 거라고 하면 더 맛있을걸?”
납득하진 않은 것 같았지만 세실은 뭉근하게 끓고 있는 카레를 휘저었다. 저항하는 것이 더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혹은 의외로 그 과정이 마음에 들었을진 모르는 일이다. 대충 주변의 정리를 끝낸 두 사람도 식탁으로 와 앉았다. 지금 이 장면만 두고 본다면 마치 세실에게 한 끼를 얻어먹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전후 사정을 다 알아도 그것만큼은 영 색다른 일이어서 그런 건지 자각도 없이 세실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두 사람도 국자를 대신 받아주는 것 대신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정작 요리하는 중엔 사라졌던 식욕이 식탁에 앉자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이래서 남이 해주는 요리를 먹는 건가 싶다가도, 다들 일상으로 돌아간 이후로는 이렇게 다같이 모여 밥을 먹었던 적이 드물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 시간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조금은 풍요로운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세실은 내버려둔 채로 세 사람은 일단 이 평화를 만끽했다.
“기다림에 부응할 만한 카레였으면 좋겠네.”
“분명 맛있을 거예요. 과정도 순조로웠고.”
“... ….”
본의아니게 타버린 고기들은 다 골라서 뺐으니까. … 다 골라냈겠지? 케이든이 잠시 기억을 회상하는 동안 유릭은 문득 식탁 위에 올려진 세실의 미니 드론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세실이 보던 것이… …. 옆면의 버튼을 누르자 눈처럼 생긴 LED에 불이 들어오고, 정수리 위치에 달린 렌즈에서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식탁에 앉아 있던 두 사람에 이어 힘없이 카레를 젓고 있던 세실의 시선까지 한곳으로 모였다.
비프카레의 효능… 마치 오래된 로컬 맛집의 벽에 달려있을 것 같은 제목의 글이다.
“... ….”
“... ….”
“... 내용이 좀 이상하지 않나?”
“비프 카레에 이런 효능이… …”
“아니. 그럴 리가 없으니까.”
세실은 자신이 젓고 있는 냄비를 내려다본다. 짙은 갈색의 녹진한 카레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거의 완성이 된 것처럼 보이는 카레의 표면에는 기포들이 어떤 패턴도 없이 몽글몽글 올라오다가 터지기를 반복했다. 마음이 안정되면서도 묘하게 중독적인 광경이었다. 세실은 짧게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결국 말했다.
“여러분은 상대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다면 뭘 할 건가요.”
“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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