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무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호위에, 습격에, 귀찮은 전투가 겹쳐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머리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을 털어내며 류진이 웃었다. 추위라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겉옷 하나만 걸친 채로 전장을 누비던 그가, 오늘따라 춥다며 한 쪽 팔을 쓸어내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싸늘한 날씨이긴 한 것 같았다. 라이무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과장되게 몸을 쭈그렸던 류진이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말했다.
“라이무네 집에 가도 돼?”
“그럼요, 당연하죠. 그런데 갑자기……?”
“네 집이 여기서 좀 더 가깝잖아. 어서 어디든 들어가고 싶어.”
어디든 괜찮은 거냐고 묻고 싶어지는 이야기였지만 라이무는 궁금한 점을 제대로 삼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행선지는 곧장 라이무의 집이 되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주택가로 접어들면, 여기저기에 쌓인 눈이 운치 있는 정경을 만들어낸다. 류진은 일부러 눈이 쌓인 곳만 푹푹 밟았다.
“으~ 추워, 추워. 따뜻한 거 먹고 싶다. 아, 그리고 오늘은 술도 마시고 싶네.”
“뭔가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역시 이런 날씨에는 오코노미야키겠지……. 그리고 담백한 사케 한 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겉옷을 벗어 던진 류진이 익숙하게 냉장고를 열어보며 중얼거렸다. 와, 전부 있잖아? 운이 좋은데! 옆에서 재료를 쭉 훑어보던 라이무는 살짝 웃음지었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을 하자니, 라이무도 신이 난 모양이지. 류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재료부터 양손으로 가득 꺼냈다. 벌써부터 몸과 마음은 오코노미야키를 먹는 자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죽 만들어야겠다. 다른 재료 좀 썰어줄래?”
“그럴게요.”
라이무가 양배추와 양파, 베이컨, 오징어를 하나씩 챙겨가는 동안, 류진은 부침가루와 달걀을 챙겼다. 소금과 후추를 찾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라이무의 집 주방을 꽤 익숙하게 드나들었다고 생각했건만, 아직 잘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역시 파트너라고 해서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구나. 그게 집 안 조미료의 위치라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류진은 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부침가루를 넣고, 그 위에 달걀을 올린다. 계량 숟가락을 들고 소금을 조금 뿌린 후, 후추를 시원하게 뿌린다. 물은 곧바로 반 컵을 전부 넣지 않고, 조금씩 넣으며 농도가 적절해질 때까지 섞었다. 반죽이 너무 물러지면 바삭하지 않은 오코노미야키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좋아하는 음식인 만큼 신중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추운 날이면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
반죽을 적당히 만든 이후 류진은 라이무가 꼼꼼하게 칼질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생활력이 강하고 요리에 능통한 라이무가 가끔은 부럽기도 했다. 언제든지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전부 해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복 받은 재능이다.
“선배, 이쪽은 다 됐어요.”
“응, 그럼 이쪽으로 줄래?”
이어 라이무가 깔끔하게 손질된 오징어와 양파, 양배추를 그릇에 나눠담아 건네주었다. 류진은 양손에 비닐장갑을 낀 채로, 재료를 반죽과 함께 열정적으로 섞는다.
“역시 나중에 은퇴하게 되면 오코노미야키 집이나 하나 차릴까 봐.”
“은퇴할 생각은 있으시고요?”
“뭐, 사실은 없다는 쪽에 가깝긴 하지만.”
농담처럼 가벼운 이야기였다. 확실히 자신의 꿈은 가게를 하나 차리는 것이었지만, 준비할 재산은 그리 녹록지 않다. 게다가 지금의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점도 중요했다. 일용직이지만 일꾼 일은 항상 다양한 사람과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시노비로서 사람들을 지키고 악을 처단하는 일은 자신의 사명과 운명에 걸맞은,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아마 자신은 은퇴하기 전 죽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사실은 알고 있지만, 꿈은 가져서 나쁠 것 없으니까.
반죽을 열심히 뭉친 손은 이내 프라이팬으로 향했다. 넉넉하게 기름을 두른 후 반죽을 넓게 펼쳤다. 라이무가 옆에서 베이컨을 올려주었고, 불을 올려 굽기 시작했다.
“제가 해도 되는데…….”
“엇, 그럼 라이무가 해줄 수 있어? 아무래도 내가 만든 것보다는 라이무가 만들어준 게 훨씬 맛있으니까.”
“그럼요. 제가 할게요.”
라이무가 팬을 이어받았다. 그가 테두리가 익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는 동안, 류진은 한 발짝 떨어져 풍겨오는 냄새를 맡으며 라이무의 옆모습을 구경했다. 과연 사랑하는 사람이 요리를 하는 모습은 언제나 보기 좋았다. 자신의 전 배우자가 요리를 할 때도 그랬다. 신경이 다른 쪽에 쏠려있는 동안 마음껏 볼 수 있는 게 새삼스레 좋았다.
오코노미야키 소스와 마요네즈, 가쓰오부시를 꺼내 준비하며 류진의 시선이 문득 달력으로 향했다. 올해도 벌써 끝물인가. 유독 다사다난한 한 해였지만, 어찌 되었든 눈앞의 상대와 마음이 통했으니 올해는 참 즐겁고 좋은 1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 다 됐어요.”
“응. 접시에 옮겨 담자. 소스 예쁘게 뿌려줄게!”
어느새 끝자락이 바삭하게 구워진 오코노미야키가 류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그랗게 완성된 오코노미야키를 접시에 옮긴 채로, 류진은 오코노미야키 소스와 마요네즈를 양손에 들었다. 그리고 하나씩 겹쳐가며 뿌리기 시작했다. 결과물은 그렇게까지 예쁘지는 않았다. 울퉁불퉁하고 중구난방이었다. 하지만 뿌린 사람의 눈에는 마냥 맛있게만 보였다. 그 위로 가쓰오부시를 올린 뒤, 류진은 곧바로 사케를 꺼내들고 탁상 앞에 먼저 앉았다. 갓 냉장고에서 나온 사케가 차가운 잔과 만나 시원함을 풍기고 있었다. 류진의 얼굴이 행복으로 물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젓가락으로 뭉텅이를 잘라 한 입에 집어넣자, 고소하고 담백한 데다 약간의 달콤함이 몰려왔다. 류진의 젓가락질이 빨라졌다. 한 손으로는 잔을 들고 사케를 넘기기 바빴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러게, 진짜 많은 일이 있었어. 하나하나 설명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그렇지만 라이무와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네.”
“……그러게요. 저도 기뻐요.”
사케 한 잔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문득 류진은 오늘의 인무를 생각했다. 여태까지와 같이 함부로 힘을 휘두르려는 시노비를 막고, 마물을 죽이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약간의 변화가 느껴졌다. 관절이 삐걱거렸고, 눈 끝이 순간 흐려졌다. 매일 연찬을 거듭하고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류진은 하고 싶은 말을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럽게 입 바깥으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요즘따라 움직일 때 여기저기가 불편한 느낌이야."
“몸이요? …어떻게 불편한데요?”
여전히 한 손으로는 열심히 젓가락질하며, 류진은 이어 말했다.
"음……자세히 설명하자니 뭔가 복잡하네! 어딘가 툭툭 멈춘다고 해야 하나? 꼭 기계의 수명이 다 되어가는 것 같아. 그렇게 되면 한 번씩 작동을 중지하는 일이 생기잖아."
라이무는 입을 다물었다. 걱정하고 있는 걸까. 언제나 그는 혼자 심각한 생각이나 발상에 빠졌기 때문에, 류진으로서는 그의 마음을 알기가 힘들었다. 그대로 말해주면 좋을 텐데. 바깥으로 뱉어내면 편해질 텐데.
함부로 라이무의 생각을 유추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낯빛은 너무 어둡잖아.
"하하, 그런 표정 짓지 마. 매일 한계까지 움직이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완전히 멈추는 날이 오기도 하겠지."
젓가락질도 어느새 느려졌다. 사케가 속을 따뜻하게 데우기 시작했다. 언젠가 작동이 멈추고 자신은 죽게 될 것이다. 그건 아주 당연한 사실이었고, 전혀 비극적이지 않았다. 예전부터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 어느 누군가는 순응과 복종이라 말했지만, 류진에게 있어 숙명이란 벗어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그 사명에 맞추어 살면 된다.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들 주어진 일을 달성했을 때의 기쁨이 있기에 자신은 두렵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일 수도 있겠지. 혹은 내일일지도 모르고. 한 번 삐걱거리기 시작한 시계의 침은 언제 멈출지 모르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류진은 기분이 좋았다. 정말로.
“…….”
라이무의 대답이 곧바로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류진은 쉽사리 라이무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기껏 맛있게 조리한 오코노미야키가 전부 식어버릴 것이다. 류진은 빈 잔에 사케를 다시 따르고, 한 번에 잔을 기울여 들이켰다.
"그러니까 더욱 지금을 소중히 해야 하는 거야."
제대로 자신을 쳐다보지 못하는 라이무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까.
“봐봐, 좋아하는 사람이랑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해 먹을 수 있잖아? 이런 순간이 언제 또 찾아오겠어.”
“……선배…….”
“그러니까, 라이무. 표정 너무 구기지 말고. 웃으면서 먹자!”
“네…….”
다시 젓가락질이 시작됐다. 수저가 접시 위를 오갔다. 하지만 라이무가 요리에 손을 대는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역시 이런 이야기는 꺼내지 말 걸 그랬나.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라이무도 언젠가는 알아야 하고, 기억해 두어야 할 일이니까. 류진은 라이무를 사랑했다. 라이무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자신이 죽고 난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사람 하나가 없다고 무너지는 삶만큼 시리고 차가운 것이 또 있을까.
오코노미야키의 겉은 무척 바삭바삭했다. 안은 재료가 잘 버무려져 있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이번 겨울도 무사히 지나가겠군. 류진은 흐르는 이 시간이 정말로 소중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먹으며 지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러니까,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이 순간이 즐겁다면 좋겠다. 즐거운 마음이 있으면 미래를 알아도 두렵지 않으니까.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언제 이만큼이나 마신 건지. 취기가 돌기 시작해 금방 몸에 힘이 빠졌다.
언젠가 끝이 올 그날까지, 지금처럼만 함께 있자.
- 행복의 정량은 정해져 있다.
라이무는 계량을 늘 칼같이 했다. 필요한 양에서 초과하는 것은 싫다. 숟가락 계량이라면 확실하게 고봉에서 깎아냈고, 무게라면 단 1g도 틀리지 않기 위해 전자저울도 부엌에 갖췄다. 냉장고를 열고 운이 좋다고 중얼거리는 류진의 뒷모습을 보며 라이무는 앞치마를 꺼냈다. 어디까지나 기분내기용이지만 가끔은 이런 유치한 행동도 필요하다.
- 아직 초과하진 않았나?
있을 리 없는 작은 행운. 행운이라고 믿고 있는 선물에 싱글벙글 웃는 그를 보며 역시 준비해 두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자주 오는 편이지만 불규칙하기에 언제 올지 모를 류진의 방문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신선한 재료로 준비했던 과거를 칭찬했다. 류진과 지낸 지 어느덧 6년이 되어간다. 그가 바라는 음식은 물론이고, 취미, 습관, …신념. 모든 것은 눈에 보듯 훤하다. 한없이 투명하고 정직한 그의 성격 역시 일조했을지도 모른다.
"반죽 만들어야겠다. 다른 재료 좀 썰어줄래?"
"그럴게요."
일정하게 도마에 부딪히는 칼날 소리가 조용한 부엌을 채웠다는 순간일 뿐. 뒤에서 어수선하게 뒤에서 조미료를 찾는 인기척에 미소 지어진다. 본인은 한 톨의 마음조차 있지 않은, 사실상 농담과 다를 바 없는 꿈 이야기를 들으며 재료들을 정리했다. 정말 그가 그렇게 했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그는 자신의 목숨이 으스러질 때까지, 손가락 한 마디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인간을 구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그러니까, 언젠가, 한 번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손은 최소 두 개 혹은 그 이상이 필요할 정도로 그가 은퇴하는 것을 상상했다. 이만큼이면 충분해! 나도 열심히 했고, 너도 열심히 했어! 이제 최종 목표인 오코노미야키 가게를 차리자! 라는 희망찬 상상을 할 정도로 라이무는 낙관적이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비관적이며 극단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 재료를 썰고 식칼을 역수로 쥔다. 선배가 이대로 여기에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하지만 그의 의지를 꺾고 행복을 으깨며 육체의 안전을 지킨다 한들 그건 정말 지쿠요 류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칼을 다시 바로 쥐어 내려놓았다.
*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라이무는 이 말을 참 좋아한다. 그토록 희망하던 일상의 언어니까. 다녀왔어, 어서 와, 오늘은 뭘 먹을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먼지 같은 것이니까. 이 말을 듣기 위해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얼마나 헤맸던가. 젓가락으로 조금 덜어서 입에 넣으면 아는 맛이다. 가쓰오부시로 향을 내고 비교적 밀가루와 마요네즈, 데리야키 소스가 범벅인 맛. 라이무는 먹을 것에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꽤 마음에 드는 듯 손을 바삐 움직였다. 손마다 역할을 주고 오코노미야키를 입에 넣으면서 사케 역시 목뒤로 넘겼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러게, 진짜 많은 일이 있었어. 하나하나 설명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그렇지만 라이무와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네.”
“……그러게요. 저도 기뻐요.”
그를 붙잡으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썼다. 죄책감을 자극하고, 매도하고, 매달리고, 빌고, 화를 내고… 어떻게든 참으려고, 숨기려고 했던 마음은 물꼬를 트기 시작했고 결국 범람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그가 다시 자기 손을 잡아줬다. 맞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다음 해를 맞이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면 이번만큼은 기분을 내어 신사에 가보도록 할까. 자신치고는 답지 않은 행동이지만 가끔 소중한 사람과는 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 또한 의미가 생기곤 한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요즘따라 움직일 때 여기저기가 불편한 느낌이야."
- 정량은, 정해져 있다.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머리에 차가운 무언가가 쏟아지는 느낌이다. 류진이 무어라 말하지만, 그것은 라이무에게 닿지 않았다. 알고는 있다. 각오도 했다. 이 각오는 이미 수년 전부터 했었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가야 하는가? 이미 그는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이상의 생명들을 구했다. 더 이상 자신을 태울 필요가 있을까? 그에게 구해진 자들은 은혜를 알기나 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쿠요 류진은 그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민간인들은 자신의 은혜를 보았다 하더라도 결국 잊어버릴 것이다. 시노비란 그런 존재니까.
눈앞의 류진이 말을 한다. 들리지 않는다. 오직 한 문장만을 되뇌며 생각을 이어간다. 이 자는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지? 그렇게 붙잡아도 결국 그가 자신에게 허락해 준 것은 약간의 말미일 뿐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왜 희생해야 하냐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결국 류진의 헌신적인 행동에 화가 나는 건 라이무였다. 요마화를 최후로 미루며 인간인 채로 싸운다고 해도 잠깐의 시간이 주어졌을 뿐이다. 결국 류진은 라이무를 떠나갈 것이다. 아니, 류진은 라이무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뺏어가는 것이다.
웃으면서 먹자는 말에 기계적으로 젓가락이 움직인다. 입에 들어가는 것을 의무적으로 씹는다.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분에 겨워 정량에 넘치는 것을. 자신이 갖지도 못할 것을. 주제에 맞지 않은 것을 탐하다가 벌받는 것 같아. 라이무는 고개를 들어 들뜬 표정인 류진을 바라봤다. 따라 웃었다. 그래,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 결국 분에 넘쳐흐르는 것은 되돌리지도 가질 수도 없이 사라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