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예술품이 즐비했다. 현서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유명하다는 미술가나 조각가가 여는 전시관에 줄창나게 따라다녔고 한 번 본 작품은 절대 잊지 않았으나 그런 소년에게도 생경한 미술관은 청보랏빛 눈동자가 빙빙 돌아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이옌’還緣의 작품이라면 제법 유명했으니 4층짜리 전시관을 전부 대여했음에도 관람하는 이들에 치일 정도로 사람이 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공개 작품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가. 부모님께서 차분히 설명해 주셨던 것 같지만 들뜬 마음에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동생은 아직 나이가 어려 오지 않았지만 기념품점에 예쁜 상품이 있다면 사 가야지. 그 애는 예쁜 걸 좋아하니 화려한 엽서나 손수건이라도 좋아할 테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현서의 나이도 채 10살이 되지 않았지만.
워낙 어른스러운 아이라 소년은 금세 혼자 다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전시실 안으로 조심스레 걸어들어갔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작가의 말이 조금씩 달려 있었고 미리 건네받은 팸플릿에는 유명 작품의 이름과 위치가 적혀 있어 돌아다니기 편했다. 1층은 화음월상, 총 네 개의 큰 구역으로 나뉘어 작가가 직접 배치를 조정했다고 했다. 한 방향으로 관람하도록 유도하는 일반적인 전시와 다르게 출입구에서 이어지는 중앙의 큰 공간이 있고, 원하는 구역을 좋아하는 순서로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1층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온도에 따라 영원히 꽃이 지었다가 피는 태화관의 〈영원부영원〉이나 현음관의 유리로 만든 푸른 연꽃을 검은 물이 가득 찬 거대한 수조 위에 띄워 감상하는 〈처염상정〉, 보석을 밟고 사랑하는 이에게 달려가는 그림인 〈연연〉이 특히나 유명했으니 눈에 한참이나 담아도 모자랐다. 적월관의 마음을 취하기 위해 몸을 불태워 비상하는 불사조를 그린 〈연뢰〉도 좋았지만 이 전시관에서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라면, 역시.
압도적으로 거대한 캔버스에 파묻히는 경험은 아주 오랫동안 남는다. 얼어붙은 동상 흔적이 평생 가는 것처럼.
가로 12m, 세로 3m의 거대한 그림은 북암관의 별실 하나를 다 썼다. 작가의 코멘트로는 이 그림을 볼 때뿐만 아니라 그릴 때의 체온조차도 낮길 원해 여름이면 항상 아주 낮은 온도로 에어컨을 튼 후 얼음장 속에서 그렸단다. 예술은 영원하니 누구라도 작품 앞에서 얼어붙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혀져 있었다. 광활하고 아름다운 설경. 오로지 흰색과 검은색, 명도가 전부 다른 회색으로만 칠해진 그림의 이름은…….
문득 사방이 조용했다. 별실에 그림을 구경하러 온 이가 저뿐이었던 건지, 운이 좋았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이 그림은 오로지 혼자 보는 것에서 위압감을 느끼도록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현서는 이번 전시를 놓치지 않고 방문하길 잘했단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뒤따라 부모님과 헤어져버린 것이 뭇내 불안했다. 넓지 않은 전시관이고, 전시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겠지만……. …그러고 보니 직원이나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가신 거지?
“아무도 없나요?”
안내데스크로 향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문은 열리지 않고 방문객이라고는 부모님을 포함해서 한 명도 남지 않았지만 전시관의 노란 불빛은 생생하게 작품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오픈하기 전 전시관을 모조리 대여한 기분이라 소년은 갑작스레 이 많은 사람이 사라질 리 없다는 진실에서 뛰쳐나가 마냥 신이 났다. 물론 전시 예절은 철저하게 지키겠지만 사람에 치여 아직 작은 키로 잘 보이지 않는 유명한 작품을 독점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예술품 납품을 전문으로 하는 집안에서 횡재나 다름없었다. 무엇부터 볼까, 북암관을 마저 돌아볼까. 메인 작품은 이미 보았지만 다른 작품도 결코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이었으니 자그마한 심장이 콩닥거렸다. 아직 작품에 담긴 깊은 의미라거나 작가의 속뜻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예술에는 모름지기 가슴을 뛰게 만드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언젠가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너무나 즐거울 것 같았다.
별실에서 나와 간이 벽으로 구분된 복도에 서자 현서는 고민의 답을 내려야 했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관은 전부 이어져 있으니 어느 쪽을 먼저 가도 상관은 없다만은 이 작은 소년은 전시관을 탐험하는 기분에 한껏 열이 올라 있었다. 팜플렛에 간단한 지도가 나와 있었던 것 같으니 세 번 접힌 빳빳하고 반들거리는 종이를 펼쳐 더 마음 가는 곳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제야 소년은 고양감을 넘어 불안이 치달아 올랐다. 지도와 보이는 관의 배치가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뭔가, 너무 이상한데…….’
전시 도중 아주 특별한 일이나 사고가 있지 않는 이상 이렇게까지 배치를 바꿀까?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모조리 뒤죽박죽 섞인 작품들이 흘끔거리며 저를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마치 미술품이 살아 있는 듯한 감각. 분명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너른 공간에 혼자 있기 때문일 거라며 스스로를 달래면서 어떻게든 팜플렛 지도와 비슷한 공간을 찾아냈지만 있어야 할 작품은 누군가 치워버렸는지 보라색 구분선이 반쯤 사라져 있었고, 마치 대신이라도 되는 마냥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고풍스러운 책상 하나만이 덩그랬다. 안내소라기엔 작고 작품이라기엔 너무 동떨어졌으니 위화감이 도드라졌다.
[ 장미는 곧 영혼. 수확하기 적절한 생명의 형태. ]
책상 위 장미는 방금 막 꺾은 것처럼 싱그러웠고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 곁에 적힌 작가의 코멘트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청보라색 꽃잎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피부처럼 부드러워 자칫 잘못하다간 찢어지거나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다. 이게 뭔지 몰라도 소중히 가져가야 한다는 마음만이 솟아나 전시물처럼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꼭 쥐었고 놀랍게도 뾰족하게 솟은 가시는 소년을 전혀 다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꼭 맞는 주인을 찾은 것마냥 두 갈래 잎이 바람 없이 흔들렸다. 마치 그를 기다려 온 것처럼.
미로 같은 전시관은 이후로도 별세계였다. 사계를 테마로 했다지만 진짜 계절을 건물 안에 구현할 수 있을 리도 없건만. 고개를 돌리면 기어가는 듯 위치가 조금씩 바뀌는 흰 뱀 조형물을 지나 세상에서 가장 검은 도료를 섞어 만들었다는 〈침묵〉 앞에 서자 순간 철벅, 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다른 사람일까 하는 반가움이 반, 혹시 작품을 치고 지나갔나 하는 걱정스러움이 반인 채 고개를 돌렸으나 거기에 사람은 없었다. 잘못 들었나? 목을 가눈 탓에 소년의 흰 머리카락이 〈침묵〉을 배경으로 도드라지게 휘날렸다.
―찰박.
잘못 듣지 않았다. 분명히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액체, 그것도 점도가 있는 것. 에어컨에서 물이 새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에 닿으면 큰일이 될 텐데,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찰박, 찰박.
어쩐지 물소리가 제게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이다. 현서는 무심코 전시실 바닥을 내려다본다. 물이 떨어진다면 분명 아래에 고일 것이기에.
―…….
하이옌 전이 열린 전시실 1층 바닥은 회색이다. 태화관과 적월관은 카펫 색으로 분위기를 조정했으나 현음관과 북암관은 그대로 갔다고 했다. 그러니, 검은 색이 보일 일은 없을 텐데. 소년은 무심코 잿빛 바닥을 물들인 것에 손을 뻗었다. 찰박이는 소리의 정체는 이상하게도 작품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새카만 물감이었다.
한데 소년이 읽지 못한 〈침묵〉의 작품 코멘트는 이러했다. 빛을 끌어당기기에 사람의 눈이 검은색을 검다고 인식한다면 사람이 죽음을 인식하는 때는 언제인가. 타인이 타인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검은 도료가 빛을 반사하지 않고 혼자 고립되는 것처럼. 〈침묵〉은 그림이 아니라 조각이다. 만져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검고 검어 무슨 표정인지 추측할 수 없는 사람의 형상. 그런 것에 물든다면 살아있는 이는 어찌 되지. 그러나 채 열 살도 되지 못한 아이가 그런 사실을 알 리도 없고. 일부러 더 낮은 온도로 설정된 에어컨 바람이 조용하게 바닥까지 고였다.
“물러서!”
작품과 다르게 마음을 뒤흔드는 목청이 현서의 귀청을 찢어놓았다. 깜짝 놀란 소년은 화들짝 일어나다가 뒤로 볼썽사납게 넘어졌지만 소리지른 여자는 성큼성큼 다가와 괜찮냐는 물음도 하지 않고 오른손을 우악스럽게 잡아챘다. 흰 피부에 무엇이 묻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고 나서야 소년은 강철 같은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행이군. 조금만 더 늦었다간 물들었다.”
저를 낚아챈 여인은 북암관에서 본 다른 작품들처럼 새하얘서, 순간 현서는 그럴 리가 없는데도 살아있는 미술품이라고 생각했다. 눈으로 빚은 듯한 피부, 강렬하고 새파란 눈동자, 푸른 입술, 길게 깜박이는 눈꺼풀은 조각처럼 아름다웠다. 누군가 아름답도록 만들지 않고서야 이토록 조형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 무언가 가장 완벽한 걸 만들라 듣는다면 어쩔 수 없이 닮게 될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현서가 멍하니 바라보자 여자는 무슨 일이 났다고 판단했는지 어깨를 흔들어 일깨웠다. 파란 입술 아래 하얀 앞니와 붉은 혀가 벌어지고 움직이는 일련의 과정이 당연한데도 작품처럼 느껴졌다가 소년은 다시금 목소리에 파뜩 정신을 차렸다. 그가 제 이름을 물었고 답해야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그러지.”
“아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기, 감사합니다. 저는 현서. 문현서라고 해요.”
“사마계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지.”
“들어오다니요? 저는 그냥 전시를 보러 왔어요. 부모님과 함께.”
“아직도 모르겠나. 여기는 네가 있던 곳이 아냐.”
스스로를 사마계라고 소개한 여인은 강렬한 첫인상보다 더 뜻모를 말을 했다. 부모님과 함께 전시를 보러 왔을 뿐인데 있던 곳이 아니라고 하는 저의를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이 조금 없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다른 어른도 만났고.
“모르겠다는 표정이군.”
“…솔직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럼 하나 묻지. 네가 본 작품의 이름을 말해.”
“유명한 건 거의 다 봤어요. 〈영원부영원〉이랑 〈처염상정〉, 〈연연〉, 〈연뢰〉, 여기 와서는 〈설호〉를……”
“그거다.”
“네?”
“그 작품의 이름은 〈설호〉가 아니지.”
〈무상〉無霜. 서리 없는 겨울 낮을 담은 그림의 이름이라 했다. 현서는 제 기억과 완전히 다른 제목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이는 어리나 작품명 옆에는 정확히 이름이 쓰여 있었고 글자를 떼지 못한 나이도 아닌지라 잘못 읽었을 리는 없는데. 하물며 그런 쉬운 한자를 틀릴 리는 없었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낯으로 말갛게 사마계를 올려다보자 여인은 몸을 돌려 성큼 발을 내딛었다. 가타부타 설명하길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괜히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 뒤를 졸졸 따라 쫓았으나 사마계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화가 났을까? 그냥 묻지 말 걸. 기껏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을 만났는데. 게다가……. 생각은 재차 이어지지 않았다. 사마계의 팔에서 맑은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흘러내려 작품을 멋대로 감싸버린 탓이었다.
“자, 잠깐만요! 작품 훼손은……!”
“틀려. 봐라.”
“……”
작품명 〈얼어붙은 자리〉. 사람의 흔적인지 짐승의 흔적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누워 있었는지 중앙만 푹 파인 설치미술이었다. 다만, 그래, 다른 것이 있다면.
“얼어붙었어…?”
“그래.”
작품은 실제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보통 얼음이 가지는 온도도 아닌 사람을 얼려 죽일 수 있을 듯한 냉기. 때문에 사마계가 얽은 푸른 염주가 쩌적쩌적 얼어붙어 살얼음이 돋았고 계는 소년이 현상을 확인하자 능숙하게 염주를 걷어냈다. 무언가 정말 이상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 외의 사람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만.”
“그럼… 그러면, 여기는 어디인가요?”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나.”
“…….”
“나가고 싶다면 붙어 있어라.”
화가 난 것은 아니었는지 여인은 선선히 제 곁을 허락했다. 그러나 배려해 줄 요량은 없다는 듯 보폭까지 맞춰 주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 바깥으로 돌아가는 것.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 것. 이 이상한 전시관에서… 살아남는 것. 하지만 가장 가지고 싶은 건. 가장 마음을 울리는 건.
“…옆에 있어도 될까요?”
“마음대로.”
“손을 잡는 건요?”
“불편하다. 대응할 수 없게 돼.”
“그러면 옷자락을 잡고 있는 것도 안 돼요?”
대답 대신 코웃음치는 소리가 들렸다. 허락하면 어디까지 들어오나 하고 제 얕은 심산이 다 들킨 것 같아 이 추운 전시실에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래도 물러설 마음은 없었다. 현서의 집안은 문 가로 광산 사업을 통해 부를 쌓아 사연 있는 값비싼 예술작품을 사들여 보관하는 박물 사업도 겸하고 있다. 그런 집안에서 작품을 사기 전 마지막으로 고민할 때 결정짓게 하는 단 한 가지 요소가 있다면.
“……혹시 잃어버릴까 봐 소중히 가지고 싶어서요.”
소년은 장미를 손에 꽉 쥐면서도 시선만큼은 여인에게서 떼어놓지 않았다. 네 마음을 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다정한 조언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