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틈새로 달빛이 드리웠다. 층층이 겹쳐진 잎사귀가 햇살을 감싸고 빗줄기를 머금으면서 숲과 바깥 세상을 유리시켰다. 달이 얼굴을 비치도록 허락된 공간은 나무가 동그랗게 잘려나간 연못 위였다. 길게 찢어진 초승달이 물길을 가로지르며 호수를 한 움큼 베어삼켰고 수면에 반사된 빛이 주변을 희게 비춰 숲속 녹음이 한낮처럼 빛났다. 쏟아지는 월광으로 멱을 감던 여자가 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넘겼다. 쏟아지는 백발이 그 자체로 베일이 되어 상반신에 드리웠다. 숲의 주인은 흙에서 태어난 작은 세계를 전유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긴 삶이 안배되었으니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도 차고 남았다.
머리 위에서 부엉이가 우짖었다. 하늘이 밝기 이르나 새벽의 이름을 가진 남자는 동이 틀 때까지 인내하지 않았다. 미풍에 섞인 걸음걸이를 눈치챈 마녀도 뒤를 돌았다. 그림자에 발자국을 감추거나 나뭇가지 사이로 기척을 숨겨도 숲에 발 들인 나그네의 행적은 모두 주인의 시선에 닿았다. 제 땅을 사랑하여 언제고 아끼며 살피는 까닭이다. 그 사실을 아는 현서는 풀밭을 지나면서 꽃 한 송이 벌레 한 마리 뭉개트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었다. 검은 옷을 걸친 두 남녀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찾았습니다.”
“일찍 깼군. 아침에 부르려 했는데.”
약속은 동이 튼 새벽이었다. 어스름에 맞춰 동행인을 깨울 계획이었는데. 그 새 참지 못하고 달려와 어리광 부릴 줄은 몰랐다.
“당신이 곁에 없어서요.”
갑자기 사라지신 줄 알았습니다. 걱정과 섭섭함을 절반씩 담은 투정이었다. 현서가 허리에 팔을 감고 정수리에 뺨을 대며 어리광을 부리면 계는 반대쪽 뺨이나 흘러내린 머리칼을 매만져 달래곤 했다.
“데려온 적 없는데.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줄 알았나.”
“당신의 향을 좇았습니다. 부러 숨기지 않으셨지.”
“허, 사냥꾼 다 되었어.”
의무를 포기하고 도망쳤어도 어린 날부터 단련해 온 기술이 근섬유에 끈끈히 붙어 있었다. 둔해지기는 커녕 추적자를 피하는 일 년 동안 날카로이 숯돌에 갈렸다. 간절함이 앞서자 시신경이 주변 풍경을 읽으며 흔적을 살폈다. 젖은 흙과 마른 잎 사이 사람 냄새, 그마저도 이끼와 말린 구근을 닮아 숲 풍경에 섞여들었지만 포도주의 희미한 알콜 향이 짐승과 인간을 분간시켰다. 마녀가 못 가장자리에 걸쳐두었던 술잔을 집어들자 현서는 병을 정리했다. 반쯤 남은 액체가 찰랑거렸다.
“따라와. 소개할 자가 있다.”
“예.”
마녀가 드레스 자락을 당겨 주름을 피는 동안 등 뒤로 다가온 현서는 어깨에 반투명한 숄을 걸쳐 주었다. 한밤중의 소풍을 마무리하고 다시 깊은 어둠에 뒤섞일 때다.
부엉이와 솔매, 청솔모와 땅두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날벌와 나무 기둥과 바위 밑에 모습을 감춘 포자 버섯까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숲은 생물이 약동했다. 가장 깊은 물밑에서 태어난 여자는 숲 생명의 근원과 긴밀히 연결됨으로써 마법의 힘을 얻었다. 동굴에 광석을 캐러 온 인간들이 서로 죽이고 시체를 숲에 감추면서 마녀는 끝에서부터 끝까지 사방을 덮는 결계를 만들어 외지인을 쫓아냈다. 얕은 가장자리에서 과일이나 풀을 캐며 생계를 유지하는 근처 마을 주민들, 꼭 숲을 가로질러야 하는 여행자들이나 출입이 자유로웠다. 해를 넘기며 마녀의 숲은 점점 견고해져 바깥과 유리된 작은 세계를 일구었다. 서쪽 하늘에서 폭풍이 불어닥치고 먼 창공에서 눈부신 벼락이 꽂혀도 빛은 어두침침한 나무 그늘에 가로막혔다. 사시사철 얼지 않는 강이 흐르며 습하고 온난한 날씨가 이어졌다. 숲의 규모가 웬만한 귀족의 영지를 능가했으므로 왕성에서는 오래 전부터 서쪽 마녀의 처우를 논했다. 전전대 왕이 협상에 성공해 주기적으로 물자와 지식을 교환했다. 최초의 교역은 숲의 광물과 약재를 마녀가 원하던 책으로 바꾸었다. 다음으로 마녀는 인력을 요구했다. 책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함이었다. 보름 간 숲에 의탁한 왕성의 마법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서쪽 숲에는 용이 산다.”
“왕성이 발칵 뒤집혔다지.”
세계의 진실을 쫓는 지고한 숲의 마녀라도 결국은 집에 틀어박혀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겁쟁이. 율법서를 탐독하며 사상의 지평을 넓혀도 머릿속 환상에 불과하다. 왕과 귀족은 은근히 요술쟁이 여자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마녀가 요주의 인물로 부상한 것은 숲에 다녀온 모든 학자들이 같은 말을 하면서부터였다. 공중을 떠도는 마력을 인간이 다루기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이 힘은 누구를 위해 안배되었을까. 원래의 주인에게 기적을 빌리도록 잠시 허락받은 데에 불과하다면 오만한 허리를 굽히고 마땅한 예를 갖추어야 하지 않나. 질문하며 마녀는 추론의 근거를 보였다. 그 괴물은 숨을 깊이 들이쉬는 것만으로 마력을 흡수해 불을 내뿜었다. 마력을 보관하는 장기가 따로 있어 고등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열량 소모가 적었고 운용의 효율이 높았다.
“그대들은 이 숲의 마녀가 결계의 핵인 줄 알지. 나를 죽이면 내 땅을 차지할 줄 알아.”
제가 보내진 이유가 그러하니 현서로선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를 죽이면 용 또한 죽을 줄 알고.”
“정말 연결되어 있습니까?”
“왜.”
“제가 지켜야 할 분께서 한 명 더 늘어나는 줄 알고.”
“가소로워.”
코웃음치는 반응에 사과를 돌려줄지 설명을 기다릴지 고민하던 현서는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도 동물도, 날벌레도 우짖지 않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니 시간이 멈춘 듯 사위가 잠잠했다. 이변을 보고하기 전 먼저 공기가 진동했다. 암살자는 마법에 문외한이었으나 어깨를 짓누르는 기압으로 다가오는 위력을 체감했다. 파악이 늦었던 사유는 눈앞의 기운이 적의나 살기가 아닌 단지 존재만으로 내뿜는 압력이었던 까닭이다. 굳은 몸 앞으로 마녀가 다가왔다. 쉬이, 천천히 숨 쉬어. 흰 손가락이 뺨부터 턱을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긴장한 근육이 이완되면서 차차 시야가 돌아왔다. 마녀의 어깨 너머는 유독 검었다. 풀과 바위로 실루엣이 나뉘는 대신 가장 검은 물감을 덧칠한 듯했다. 낯선 어둠에 두 눈이 익숙해지고서야 현서는 그것이 검은 비늘임을 깨달았다.
감긴 눈이 뜨였다. 사람의 머리통만한 눈꺼풀이 꿈틀대더니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위아래로 길게 찢어진 동공은 뱀의 그것이었으나 이름을 아는 파충류보다 서슬퍼렇고 마주치는 순간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마냥 공포스럽지도 않은 게.
“당신을 닮았군요.”
깜빡임 없이 노려보는 시선이 계의 두 눈과 같았다. 익숙한 빛으로 현서는 사랑과 경외를 동시에 느꼈다. 정해진 명령을 수행하도록 길러진 남자의 애정은 숭배와 맞닿아 있었다.
“숲의 파수꾼으로 태어난 우리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 비단 용 뿐만이 아냐. 숲이 불타면 내 몸도 타오르듯 아플 것이고 나의 괴로움은 고스란히 용과 숲에게 전해진다.”
마녀가 사랑에 배신당했을 때 한여름 녹음은 갑작스런 겨울을 맞이했다. 떨어진 낙엽이 썩으며 악취를 풍겼으니, 눈앞의 남자가 저를 속였을 때 계는 차분히 감정을 가라앉혔다. 같은 상처로 두 번 터전을 앓게 하고 싶지 않았다. 벌어진 흉터는 곧 약점. 인간이 인간이라서 생길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일면. 저를 죽이러 온 남자가 눈치채지 않길 바랐다.
“아까의 답을 하자면, 내가 죽어도 용은 버틴다. 용이 존재하는 한 숲도 유지될 것이고.”
“그 반대는.”
“지금껏 인간들은 다양한 수로 나를 죽이려 했지.”
숲에 불을 지피면 용의 날개짓으로 잠재우고 결계를 강화했다. 거대한 입과 어금니가 침략자를 집어삼켰다. 용을 죽이진 못할 테니 여자를 죽여야 한다며 마녀를 바깥 세계로 끌어내려 애썼다. 그러나 언젠가 깨달음에 도달할 것이다. 마녀의 죽음만으로는 숲을 빼앗을 수 없으니 진정한 주인을 죽여야 한다고. 용의 목을 베면 영역에 깃든 모든 존재가 수중에 들어오리라고. 그러면 용살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용은 마녀의 동행인을 살피듯 응시했다. “새로운 인간을 만나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지.” 직전의 만남은 마녀의 잔에 독을 탔다는 그 자일 것이다. 현서가 앞질러야 하는 죽은 남자. 같은 자격을 얻어 기쁨이 차오르면서도 아직은 부족하여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때 마녀가 암살자의 손을 붙잡아 용의 목 위로 올렸다. 두껍고 질긴 비늘은 파충류의 신체보다는 오래된 나무 껍질 같았다. 상처 없이 견고하고 방패처럼 단단한 거죽의 촉감을 맨손에 새기면서 현서는 늦은 밤 마녀의 피부 위에 올랐던 비늘 모양 흉터를 떠올렸다. 비슷한 감촉에 왠지 연인의 나신을 만지는 기분이 들어 귓볼이 홧홧하게 타올랐다. 턱 밑부터 시작해 목을 천천히 만지다 보면 두 사람은 용의 폐에 가까워져 있었다.
“폐 바로 위, 희미하지만 뼈가 보이지.”
고개를 돌리자 오르락내리락하는 갈빗대 위로 어꺠와 가슴을 잇는 뼈가 보였다.
“저곳 가죽은 아주 연하다. 부엌 칼만으로도 찢어지나 폐와 연결되어 치명상을 남기지.”
“그걸 어째서 제게 알려주시는지요.”
“지키고 싶다면서.”
마녀는 용의 가죽을 더듬던 손을 당겨 다시금 손가락을 얽었다. 빛이 들이치질 않으니 보석의 반짝임도 어둠에 갇힌 채나 겹친 손 위로 반지의 무게가 선명했다. 왼쪽 약지에 결혼 반지를 끼는 건 말단에서 시작한 혈관이 심장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란다. 마녀의 심장을 움켜쥔 왼손은 다시금 그의 약점을 손에 쥔다. 용의 역린은 다름아닌 사랑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다른 누가 있는지 남자는 확인하지 않았다. 질문은 어리석다. 나와 당신만의 비밀임이 당연한데도. 분위기를 망치는 말 대신 암살자는 어둠 속에 녹아들길 택했다. 잡힌 손을 당겨 연인을 품에 안자 서늘한 새벽 공기와 그보다 차가운 살결이 만져졌다. 깊은 숲의 새벽, 모든 생물이 눈 감았을 때. 태양도 아직 잠들었을 적 뜨인 눈동자가 불처럼 타올랐다. 고대하던 손님이 찾아온 밤의 밀회로 새벽의 촛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