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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벨리사와 리온은 흰사슴 여관을 나섰다. 귄체가 늦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여관 입구까지 나와 그들을 배웅했다. 벨리사는 램프를 들지 않은 한쪽 손으로 오래오래 귄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 시간에 출발하는 건 오랜만이네.”
이어지는 하품에 벨리사가 소리 내 꺄르르 웃었다.
“리온, 졸리구나.”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이니까.”
“그래도 기왕인 걸.”
“알아, 괜찮아.”
출발할 때 일 년으로 한정 지어둔 동행은 그의 곱절이나 되는 시간이 흘렀으나 어영부영 계속되고 있었다. 리온도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여 벨리사는 구태여 그 한정된 시간을 상기시키지 않았다. 출발할 때 벨리사가 보더라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탓인지 그들은 무한정 서쪽을 향해 걸었다. 그 사이에 이번의 편지 운송처럼 사람들의 부탁을 받기도 하고, 좀 더 형식을 갖춘 의뢰를 받기도 했다. 용병들이 흔히 하는 상단의 호위나 몬스터 토벌 같은 일 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건만, 두 사람은 손발이 잘 맞아 까다로운 의뢰도 어렵지 않게 해내고는 했다. 그렇게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없다면 풍경을 즐기며 걸었다. 그 풍경은 때로는 도심의 축제이기도 했고, 때로는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경관이기도 했다. 오늘의 경우는 후자였다.
“리온, 리온. 재밌는 얘기 들었어!”
아침, 귄체를 찾아간 벨리사가 오랜 친구와 이야기하듯 한참을 떠들다 돌아와서는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래도 귄체에게 일감이나 주변의 명소를 물어본 듯했다. 귄체는 자신에게 편지를 가져다준 이 두 모험가에게 큰 친밀감을 가지게 된 모양인지, 당장에 일거리는 없으나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요즘 날씨가 좋잖아. 그래서 밤이 되면 별이 엄청 잘 보인대.”
“별은 산에서도 많이 봤잖아.”
“아잇, 강에서 보는 거랑은 또 다르지~!”
벨리사가 주먹을 말아쥐고 아프지 않게 리온을 콩, 콩 두들겼다. 마을 외곽에 있는 숲을 지나면 폭이 넓은 강이 나오는데, 요즈음처럼 맑은 밤이면 별빛이 어두운 강물에 비쳐서 하늘이 강에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귄체의 설명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강이 있다는 곳이 또 서쪽이라 두 사람은 굳이 돌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리온, 발 조심해!”
“응.”
벨리사는 짧은 보폭으로도 열심히 걷는 사람이었다. 리온이 그의 성격에 맞게 느긋하게 걸음을 걷다 보면 어느새 차이가 벌어져 벨리사가 저만큼 앞서나가 있고는 했다. 그러다 문득 리온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면 가만히 자리에서 멈추어 그를 기다렸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지도 않고 가만 서 있는 모습에 리온이 성큼 다리를 뻗어 벨리사와의 간격을 줄여갔다.
“곧 도착할 것 같은데.”
“물 냄새 나는 거 같기도!”
험한 산을 넘어 도착한 것 치고 마을에서부터는 지형이 그다지 별나지 않았다. 마을을 벗어나자 개간이 한창인 넓은 밭이 펼쳐져 있었고, 그 너머는 활엽수림이었다. 옆 마을로 이어지는 길인 건지 이레 동안 걸은 산길보다는 잘 정돈되어있어 걷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숲을 빠져나올 즈음에는 두 사람은 다시 나란히 걷고 있었다.
“우와!”
“오….”
강 위로 탁 트인 하늘에는 손톱처럼 가느다란 달이 떠 있었다. 달빛이 미약하여 하늘에 점점이 수 놓인 별이 훨씬 밝게 느껴졌다. 그림 같다. 벨리사가 내뱉은 감탄사와 같이, 물줄기처럼 뭉쳐진 별의 길은 정말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린 그림인 마냥 아름다웠다. 강에 비친 별빛 역시도 그랬다. 유속이 느린 넓은 강은 물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흘렀다. 물결이 거의 치지 않는 강은 하늘에서 쏟아진 빛을 온전히 담아내 정말로 하늘이 강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부 밤하늘 같아!”
거기서 나는 이곳에서 살게 되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귄체는 이 풍경을 설명하며 그렇게 말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생각을 가질 법한 풍경이었다. 보러오길 잘했네. 리온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나직하게 말했다.
야영하려면 숲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잠시 강을 따라 걸었다. 벨리사가 내내 하늘을 보며 걷느라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해, 결국엔 리온이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보곤 발 조심하라더니.”
“아하하, 그치만~ 너무 예쁜걸.”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잘 보이고.”
“응, 별 무지무지 많다~.”
그러고 보면 전에. 여전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채로 벨리사가 운을 띄웠다. 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잖아.
“아… 그랬지.”
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도록 살아온 마을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의기양양하게 출발했다고 해도 목적 없는 여정을 계속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에서라도 조언을 얻고 싶었는지, 벨리사가 노점에서 점을 본 적이 있었다. 점술사는 처음 보는 카드를 뒤섞어 뽑고는 점괘를 읊었다. 벨리사가 말하는 별에 대한 이야기는 그 점괘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때 그 점, 정확하게는 떠오르지 않는데~ 리온이랑 했던 얘기는 기억하거든.”
리온은 무언가를 잘 잊는 법이 없어 점괘를 비교적 똑똑히 기억했다. 요약하면 소망이나 목표를 향해 가라는 말이었고 그것을 별에 비유했다. 벨리사는 말했다. ‘나는 내가 있을 곳을 찾고 싶어.’ 케이트와의 불화를 피해 마을을 벗어난 벨리사가 할 법한 말이었다. 저와 달리 리온이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않자 벨리사는 거듭 그의 소망에 관해 물었다. 그때 리온은….
“잘 모르겠다고 했잖아, 바란다는 거. 찾고 싶은 것도.”
“그랬었지.”
당시에 벨리사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대로 일단락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벨리사가 이 상황에서 해묵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리온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세상에 이렇게 별이 많은데, 리온에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단 하나의 별이라는 거.”
“굳이 찾지 않아도 되는데.”
“하지만 그건 너무 외로운 일인걸.”
나는 리온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벨리사가 보여주는 진심은 가끔 사람의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다정했다. 더 없이 상대를 위하고 있는, 그 어떤 오해의 여지도 없는 곧은 마음.
“그러니까 그전까지는 내 별을 같이 찾아주고….”
“어쩌다 이렇게 길어졌지….” 벨리사는 최초의 일 년을 언급하는 리온의 말을 못 들은 체했다.
“뭐, 결과가 어쨌든 리온이 외로울 일은 없겠지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야, 내가 곁에 있을 거니까!”
“나 참….”
하하하. 잔잔한 물결 위로 벨리사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두 여행자는 계속해서 강을 따라 걸었다. 별빛이 오래도록 손을 맞잡고 걷는 여행자의 뒤를 따랐다. 향하는 방향은 서쪽. 그렇지만 그 걸음이 세상의 끝까지 닿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도….
(중략)
괴물들이 활보하는 땅.
수많은 사람이 향했으나 돌아오는 이 하나 없는 곳.
세상의 끝.
이제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너머에는 분명히….
어느 날 불쑥 나타난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저 산 너머에서 왔노라고.
나는 친애의 뜻을 담아 그들을 ▒▒▒라고 불렀다.
친구여, 첫 만남의 무례를… 너희는 나를 용서했을까?
나의 사죄는 너무도 늦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일밖에 도리가 없다.
부디 이것을 읽는 이들이 그대들을 이웃으로 여겨주기를.
― 왕국력 3년, 어느 여행자의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