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보기엔 어때?”

그 말에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메이지의 호칭이 꽤 깜찍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자신은 있어 보인다만.”

“없으면 여기 있겠어?”

벌써 튀었지. 실제로 이탈자가 없진 않았으니 메이지의 말은 짓궂은 농담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말에 이름 모를 동료가 천막 위의 군기를 바라보았다. 황궁 직속, 데아 기사단의 깃발. 이번 일의 고용주였다. 고용주가 고용주이다 보니 전선 이탈은 탈영과 다름이 없다. 그건 단순 계약 위반으로 용병으로서의 명성이 떨어지는 일과는 조금 달랐다. 요즘 같은 전쟁통에는 몸을 숨기기 쉬운 만큼 처벌도 즉각적이었다. 그는 짧게나마 동료였던 자들의 미래를 안타까워하는 것인지 짐짓 애석한 표정을 지었다. 정이 많은 사람이야. 그사이 메이지는 갑옷의 점검을 마쳤다.

데아 기사단이 주둔한 자리와 성문 사이에는 장애물이 없었다. 지형적으로는 그랬다. 견고한 성벽의 아래에는 대열을 맞추고 선 병사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분명 밭으로 쓰였을 들판은 병사들의 발자국으로 전부 짓뭉개졌다. 저런, 몇 년은 흉작이겠군. 메이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적진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이 걸치고 있는 장비의 생김새에 통일성이 없었고, 군데군데 선 깃발 속 문장이 전부 달랐다. 예상대로 집결한 가문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시골 영지까지 부지런도 하지. 어쩌면 저들 사이에도 저 같은 용병이 있을지도 몰랐다. 고민하다 여벌의 검을 허리에 찬 메이지가 그를 부르는 호칭처럼 친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친구는 기사랑 같이 싸워본 적 있어?”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역시 잊은 게 분명하군. 데릭이다, 메이지.”

“워워, 사소한 거에 신경 쓰면 은퇴할 때 다 된 거야.”

농담이라도 퇴물이란 말은 듣기 싫었는지 데릭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뭐, 종종.”

“난 처음!”

그래서 좀 기대되네. 어떻게 되려나. 메이지가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웃자 가로로 난 흉터가 구겨졌다. 곧 지휘관으로부터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슬슬 우리 차례인가? 가자, 데프.” 데릭은 메이지의 실수를 두 번 정정하진 않았다. 그들의 삶은 한데 뭉치지 않고, 어딘가에 고이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제 살길을 찾아 나가는 삶이다. 그런 용병들 사이에서 사람의 이름을 외우지 않는 성미는 별로 특이한 축에도 끼지 못했다. “잠깐.” 대신 그는 다른 걸 지적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촐랑거리는 발걸음으로 대열에 합류하는 메이지를 불러세웠다.

“투구는 없나?”

메이지는 투구란 단어를 처음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기울이다 소리쳤다.

“걸리적거려!”

이 일은 메이지가 도트라에서 네 번째로 받은 의뢰였다.

첫 의뢰는 상단의 호위로, 나라가 뒤숭숭하고 각지에서 크고 작은 싸움이 빈번하니 캐러밴이 수도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을 호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주요 고객이 귀족인지 운반하는 물품 중 다수가 귀중품이었다.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물건을 확실하게 지키고 싶었는지 상단이 고용한 용병의 수가 적지 않았고 의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 알음알음 몸값이 올랐다.

두 번째는 동굴 속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희귀 약재를 조달해달라는 의뢰였다. 박쥐를 조심하라는 친절한 조언과 함께였다. 글렌피스에서 이리 무리를 사냥하면서도 느꼈지만, 떼로 몰려다니는 것들은 언제나 성가시기 그지없다. 날개가 달려있으면 더욱 그랬다. 박쥐 떼와 한참을 겨룬 뒤 동굴 구석에만 핀다는 꽃을 의뢰인에게 가져다주자 그는 메이지가 놓고 온 박쥐 사체를 아까워했다. 그 날개도 쓰임새가 많다나 뭐라나. 고용주의 간곡한 부탁에도 메이지가 동굴에 두 번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그가 추가 보수를 제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이게 참 가관이었는데… 이름도 처음 듣는 귀족 가문 도련님이 메이지를 콕 집어 결투의 대리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명예를 위해 결투해달라니, 용병에게? 수도 귀족이면 사병 정도는 거느리는 게 보통 아닌가? 그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전쟁통에 수없이 관이 씌워졌다 목이 떨어지는 약세 귀족의 삶에는 더욱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남을 무릎 꿇리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그를 수락했으나… “장난해?” 검 한 번 제대로 들어보지 않은 어린애가 상대 쪽 대리인으로 나와 판을 엎었다. 그 과정에서 고용주를 위협했다는 소문이 퍼져(그는 중개인 앞에서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찔끔 오른 몸값이 도로 떨어졌다. 다행스럽게 귀족을 위협했다는 혐의는 상대 귀족의 증언으로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거참 싸우려고 판까지 벌인 마당에 양심적이기도 하지. 메이지로서는 행운이었으나 터무니없는 일을 겪었단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자 중개소에 남은 일이라곤 영 메이지의 성에 차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남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거지? 옆집 포크를 훔쳐다 달라는 황당한 의뢰도 있었다. 포크로 뭐할 건데? 굳이 수도까지 올라와 서성인 이유가 무엇인가, ‘견문을 넓히고 싶어서.’라고 말해도 틀림은 없으나 치레에 가까운 표현이다.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무언가 색다른 일. 그는 언제나 지루함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으나 생소함이 주는 자극 앞에선 자제가 없었다. 슬슬 북부로 갈까, 오히려 국경과 가까워지면 그가 찾는 일이 있을지도 몰랐다. 마음이 동하는, 그런 일이.

“좀 재밌는 거 없어?”

마지막 한 번이라는 마음으로 메이지는 나탈리에게 물었다. 중개소의 카운터를 지키는 나탈리는 메이지와 제법 죽이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가 말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 만큼은 말이다. 나탈리는 맥주 한 잔을 내어놓으며 말했다.

“흠… 메이지, 큰 건도 해?”

메이지가 동전 하나를 그에게 튕겨주곤 단숨에 잔을 비웠다.

“내용 따라 다르지, 뭔데?”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장소가 어디겠어.”

“전쟁터지. 근데 수도에서 무슨?”

“재촉하지 말고.”

그는 믿을 만한 지인에게 들었다며, 곧 데아 기사단이 본데일로 출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본데일? 본데일이 어딘데.” “있어, 좀 남쪽에.” “바다 보여?” “그게 중요해? 그건 모르겠네.” “에잉.” 메이지가 계속 설명하라는 듯 허공에 손을 휘적였다. “반역이래.” “또?” “그렇지 뭐.” 메이지와 나탈리의 어조는 반역이라는 중죄와 어울리지 않게 가볍기만 했다. 요즈음 어디의 누군가 반역을 모의했단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 소문이 전부 사실이라 치면 세미니온 왕국에 반역자가 아닌 귀족은 없는 것 같았다. 어지러운 때라는 증명이나 메이지에겐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해야 할 일이 눈앞에 떨어지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그래. 사람이 꽤 필요하겠네.”

몇 개의 가문이 집결할지 모르니 머릿수를 더 채워가려는 듯했다. 기사단이 용병을 고용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지만 농민을 징병하여 무기를 들려주는 것보다는 나은 판단이다. 이 나라에는 돈만 좀 쥐여주면 검을 휘두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차고 넘쳤다. 거기에 데아 기사단의 출병은 왕명. 세미니온 최정예 기사단의 이름으로 사람을 모은다면 보수는 기대할만했다. 나탈리는 며칠만 기다리면 중개소로도 의뢰가 들어올 것 같다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로 메이지의 발을 도트라에 묶어놓았다.

며칠 뒤, 메이지는 본데일로 출발하는 마차에 올랐다.

“이런~ 데릭, 이름 좀 외워주려고 했더니.”

데릭은 그 마차에서부터 함께였다. 오지랖 넓게 굴던 그는 머리가 깨져 죽었다. 할버드 같은 것을 휘두르면 투구를 쓰고도 꼴이 이렇게 된다. 맞아가며 상대해주는 것도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 뭐, 데릭이 맞고 싶어서 머리를 내준 건 아니겠지만. 메이지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병사를 베어 넘겼다. 그가 손에 든 것은 투척을 위해 개량된 짧은 창이었는데, 그런 물건을 들고 거리를 좁힐 생각을 한다니 제대로 된 병사는 아닌 듯 보였다. 잘 쳐줘야 수습생, 혹은 종자가 아닐까. 그가 중심을 잃고 땅으로 고꾸라졌다. 메이지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창을 주워 난투를 벌이는 병사 사이로 집어 던졌다. 비명은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 말이 발을 구르는 소리에 묻혀 지워졌다. 창은 또 저 같은 이가 주워 누군가를 찌를 것이다. 아니면 녹이 슬도록 시체에 꽂혀있든지.

메이지는 이곳에 와서야 데아 기사단이 왜 용병까지 고용해가며 전쟁을 치르는지를 깨달았다. 한참이 걸려 도착한 본데일에는 이미 데아 기사단의 본대가 주둔해있었다. 자신들은 지원군이었던 셈이다. 나탈리도 여기까진 듣지 못했나 보지. 지방에서 수도로 올라오는 소식이란 대개 그런 법이었으므로 의아함은 없었다. 그보다 의아한 것은 데아 기사단의 행색이었다. 메이지는 그들이 든 날이 빠지고 손잡이가 부러진 무기를 바라보았다. 메이지가 타고 내려온 마차에는 사람의 수보다 많은 무기가 실려 있었는데, 그럼에도 데아 기사단 모두의 무기를 교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쟁이란 본디 오래 이어질수록 서로가 불리해진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챙겨오는 무기가.

어디 한 군데가 빠진 건 무기가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세미니온 최정예 기사단이라 불리는 그들은 하나 같이 눈빛이 어두웠다. 몸은 전쟁터에 있으나 정신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명성이 무색해지는 몰골이었다. 죽어가는 이들도 마지막에는 눈에 열망이 고이기 마련이건만, 데아 기사단은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선 채로도 삶이라곤 모르는 사람들처럼 허망한 눈을 했다. 그래도 기사단은 기사단이라고, 그 꼴로도 검을 휘둘러 사람을 베고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같은 싸움에 임하는 동료로서 이만하면 도리를 챙기는 편이다.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모자람은 없었다. 기사단이 다르긴 하네~ 메이지의 감상은 그 정도였다. 그는 그들의 사연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해가 져서 전투가 소강상태에 이르면 발 닦고 잠이나 잤다. 야습은 없었다. 두 진영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해가 떠오를 때 즈음 부딪히기 시작해 하늘이 어두워지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메이지는 자리에 우뚝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계절 탓인지 성벽 뒤로 해가 넘어가면 하늘이 붉다 못해 핏빛으로 물들었다. 처음에는 경이로웠고, 보다 보니 하늘에도 전쟁터가 펼쳐진 것 같았다가, 이제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것참, 거지 같은 검이네.”

메이지가 그 기사에게 말을 붙인 건 본데일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검이 이것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그는 이곳에 온 지 벌써 2주나 되었다고 했다. 선발대 중의 한 명일 터였다. 짐 위에 걸터앉은 그는 퍽 지쳐 보였다. 투구에 눌린 머리카락은 정돈되지 않았고 수염도 벌써 한참은 깎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눈빛까지 흐리멍덩하니 갑옷을 꼼꼼하게 차려입고도 사람이 어수선한 기운을 풍겼다. 쉽게 말해 땅에 꽂혀있는 너덜너덜한 검보다 더 쉽게 부러질 것만 같은 꼴이었다.

“검이 왜 이것밖에 없어. 기사단 아냐?”

“아무도 주질 않더군.”

“왜?”

그는 모르겠다는 듯 어깨만 으쓱였다. 모르는 건가…. 메이지는 자기가 대장장이여도 이 딱해 보이는 기사에게는 검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쓰일 줄 알고. 눈앞의 기사는 잘 드는 검이 있으면 금방이라도 딴마음을 품을 것 같았다. 검으로 적군이 아니라 제 목을 찌를 것 같다는 얘기다. 하지만 메이지는 대장장이가 아니었고 그가 검으로 목을 찌르든 심장을 찌르든 알 바 아니었다. 메이지가 챙겨둔 여분의 검을 그의 검 옆에 꽂았다. 어디서 산 검이었더라. 썩 좋은 검이라 할 순 없었다. 그가 주로 쓰는 검은 한나에게 받은 검이고, 그 외의 것은 내키는 대로 아무거나 구해서 썼다. 그래도 날만큼은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었다. 이가 다 빠진 허접한 검 옆에 있으니 더욱 번쩍이는 것 같았다. 메이지는 기사에게 검을 내어주는 대신 그에게서 강탈할 만한 물건을 모색했다. 마침 그는 옆구리에 투구를 끼고 있었다. 데릭 생각에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그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거절을 표했다. 쫌생이, 구두쇠. 상대가 데아 기사단이라면 귀족임이 분명한데도 메이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비난했다. 기사는 불경을 지적할 기운도 없는 건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거래는 하되 적선은 없다. 이것은 용병의 보편적인 정서다.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걸 이 자리에서 한참 고민하는 것도 메이지의 성정에는 맞지 않았다. 그는 한 가지 생각을 골몰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는 재능이 없었다.

메이지는 바닥에 꽂은 검을 다시 빼 들었다. 기사는 그가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표정이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어 하늘이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비춰보니 검날에도 붉은빛이 어려 꼭 피에 물든 것처럼 보였다가, 이내 제 빛을 찾아 반짝였다. 메이지는 그대로 기사의 검을 발로 찼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검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나 운명했다.

2 / 6

Design by @06summer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