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월드가 거리를 떠도는 귀신처럼 나타나 주변 대장장이에게 검을 달라고 하면 그들은 불길한 걸 본 것처럼 무엇도 절대로 팔지 않았다.
“그쪽 칼로 자살할 일은 없으니 나한테 팔아.”
라고 말하면 “불운이 옮을 것 같으니 썩 꺼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본데일의 주변 마을의 대장장이들은 원래 그 영지의 사람들과 깊은 연이 있었으리라 싶었다. 그렇다면 돌려서 악명이 자자한 데아의 일개 기사를 쫓아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엔 뭐든지 쫓겨나는 일이 잦다. 불운하다는 말도 자주 듣곤 했다. 이래서는 대장간에 걸려있는 도축 칼이나 곡괭이를 훔쳐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같은 기사단의 기사들에게도 장비의 수리가 긴급했다. 영지전이 계속되면서 오즈월드에게 남은 칼을 빌려줄 여유가 있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몸이 크고 체력이 좋아 늘 앞쪽에 붙는 오즈월드의 손에 들어가면 칼이 제대로 남아있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갑옷이 멀쩡한 게 천운이었다. 게다가 서로에게 신경을 쓰고, 도움을 요청할만한 여유가 모두에게 없었다. 전투 직전에 어떻게든, 날이 든 여분의 검을 찾아야 했다. 말에 타고 검을 휘두른 순간 반동강이 나 맨손으로 달려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거야말로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최후의 수단으로 새로 가세한 용병들의 검을 돈 주고 사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다시 끝없이 밀려오는 병사의 행렬에 잠시 넋을 놓는다. 그는 구석 짐 위에 걸터앉아 자신의 날이 나간 검을 땅에 박았다. 열심히 갈았지만 검체가 상해서 조금만 힘을 줘도 부드럽게 휘는 대신 진동이 일듯 떨려왔다. 검이 그의 힘에 반발하는 걸 느꼈다. 곧 끝나리라는 신호를 받았다. 다신 돌아오지 않도록 두동강이 나버리겠다는 경고를 느꼈다.
수많은 병사가 발걸음을 맞춰 행렬을 한다. 전국에서 몰려든 이들이 이 쓸모없는 전투에 동원되어 이곳에 도착한 뒤, 목숨만이 보전되길 갈망하고 있다. 목숨이 보전된 채 상해버린 영혼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앞을 보고 걸어간다.
그때 누가 오즈월드의 머리 위에서 말을 걸었다. “그것 참, 거지 같은 검이네.” 해를 등진 젊은 용병 하나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짐에 걸터앉은 오즈월드를 내려다보았다.
“여기 오래 있었어? 기사 나으리.”
“검이 이것뿐이야.”
오즈월드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이제 2주가 되어가지. 그쪽은 이제 왔나 보군.” 자세히 보니 용병은 젊다 못해 어렸다. 오즈월드는 그 얼굴에 담긴 것을 찾으려 잠시 쳐다본다. 경망스럽기만 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얼굴을 하는 데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텐데.
“그러면… 내 검 줄게. 기사 나으리 입맛에 맞을진 모르겠지만. 대신 투구랑 바꿀래?”
용병이 허리춤에서 장검 하나를 뽑아 너덜거리는 검 옆에 꽂았다. 검집만 봐도 썩 대단한 명검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모양새였지만, 수명을 다한 검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반짝거렸다. 용병은 멋대로 거래를 체결하듯 이제 오즈월드가 옆구리에 낀 투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건 줄 수 없다. 기사단 소속에만 주어지는 거거든. 네가 오해를 사게 될 거야.”
“엥, 쩨쩨하게. 쫌생이, 구두쇠.”
대신 돈으로 부를 셈이었는데 용병은 다시 자신의 검을 거두어갔다. 바닥에 꽂힌 검을 타고 석양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가 다시 하늘로 향해 검의 끝을 향해 들자 대단치도 않은 시시한 검이 주황빛으로 타오르듯 보였다. 한 눈 파는 사이에 용병이 움직이고, 순식간에 오즈월드의 너덜너덜한 검을 걷어찬다.
눈앞에서 검이 두 동강이 나 바닥을 굴러다녔다. 돌에 부딪힌 모양인지 금속의 시린 소리가 둔탁하게 퍼졌다.
“이게 지금 무슨…”
“자, 이제 이거 써야겠네!”
한참을 크게 웃음을 터뜨린 용병이 자신의 검을 오즈월드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는 마치 이 그 파손이 검의 대가라는 듯이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옳은 일이다. 완전히 부러질 수 있다는 건 이치에 맞는 일이다.
오즈월드는 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길이는 적당했지만 만듦새가 조잡했다. 손잡이의 장식은 어느 귀족 가문의 인장을 따온 것이고 탄성은 좋았지만 무게가 가벼워 힘의 누실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오즈월드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가 검을 제대로 잡고선 아까 용병이 했던 것처럼 하늘을 향해 검 끝을 들어 올리자 노을의 세례를 받은 것처럼 핏빛을 반사하는 검신이 번뜩거렸다. 기사는 석양 아래에서 드디어 두 발을 땅 위에 올려두고 명확한 눈빛으로 검을 훑어내렸다. 허공을 긋듯 휘두른 다음 검집에 넣자 그는 더 이상 유령이 아니었다.
“당신, 이름이 뭐지? 기억해두겠다. 이 값은 치러야 하니까.”
용병은 노을과 비슷한 색의 머리칼을 고쳐 묶으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기사가 그 이름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애매하다. 어찌 되었든, 이 모든 건…
두 사람이 바다에 닿기 전의 일이다.
한낮 중 도착한 곳은 조금 부산스러운 곳이었다. 성곽을 확장할 모양인지 한쪽 면을 완전히 부수고 새로 벽을 세우기 위해 벽돌을 쌓는 중이다. 듣기로는 본데일에 편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외곽지역이라고 한다. 메이지는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그의 단장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귀를 닫았다 열었다 하는 기능이 있었기에 곧장 대장간으로 향했다. 오즈월드가 검의 길이는 어떻고 사철의 비율은 어떻고 손잡이의 보강물이나 가죽은 어떻고… 한미한 지역의 대장장이가 감당하긴 어려운 까탈스러운 조건을 내거는 동안 메이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요기를 했다. 둘러보니 기억이 날듯 말 듯 했다. 와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도 용병 시절이 마냥 짧지는 않았다. 그는 어느 곳이나 향했고, 어느 곳이나 떠나왔다.
메이지가 화덕에 구운 빵과 치즈와 포도주를 한 손에 들고 돌아왔을 때 오즈월드는 더 복잡한 일에 휘말렸다. 부단장에게 줄 대단한 검뿐만이 아니라 기사단에서 사용할 검도 새로 주문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외부 사람이 귀족령의 영토에서 무기를 대량으로 사가는 일이 의심스러워 보였는지 누군가 본데일의 성에 말을 전달했고, 곧바로 말을 탄 선루스 본데일의 기사단이 찾아와 그의 신분을 물었었다. 메이지가 보기에 그의 단장은 백보 밖에서 봐도 귀족의 표본이라 그 모든 의심이 무용하다고 느꼈다.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눈이 쏠렸다.
“저쪽이 부단장이라네.” 오즈월드가 말하자 아마 본데일에서 나온 기사들이 얼빠진 듯 얼굴이 되었다.
“...아침부터 달려오느라 우리 부단장이 시장했거든.” 오즈월드가 뻔뻔하게 말했고 메이지는 오즈에게도 빵을 건넸다.
본데일의 기사들은 어째서 이런 마을에서 검을 사고 싶은지 궁금해했다.
“내가 예전에 여기서 퇴짜 맞은 적이 있거든.”
그는 농담인지 아닌지 모를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나중에 때 되면 여기에 있는 주철을 깡그리 사 모으겠다고 생각했지.”
아무래도 농담인 모양이다. 메이지가 뒤에서 거들었다. 그래, 그래! 우리 단장이 본데일을 먹을 거야.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알 수 없어진 본데일의 기사들이 뭔가 납득한 건지 포기한 건지, 큰 위험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돌아섰다. 오즈월드에게는 새로운 업무가 늘어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장의 일이므로 메이지는 자신의 검이 손에 들어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 주문이 한적한 마을 대장장이의 초심을 건드려 오즈월드가 원하는 대로 그럴듯한 명검이 탄생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메이지는 대장간의 검 몇 개를 쥐어보고 오즈월드와 대장장이 앞에서 휘둘러본 다음, 취향이 없는 사람처럼 뭐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뭐든 상관없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선택은 오즈월드가 내렸다. 그는 고민하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완성된 검이 어떤 모양인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고 읊듯이 주문했다. 메이지는 그런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원래 각자에게 간섭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해가 한낮에 걸렸을 때 두 사람은 본데일을 떠났다. 제작까지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거라고 했다.
말을 타고 써드빌을 향해 힘껏 달리면서 메이지가 말했다.
“단장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면 엄청난 명검이 탄생하겠던데.”
“경에게 이 정도는 어울려.”
“그래? 또 코르크 따개로 쓸지도 모르는 데도.”
“그러다 망가지면 또 새로 만들지.”
오즈월드는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었다. 메이지는 의아해하는 동안 그가 말을 덧붙였다.
“적어도 검 몇 자루 정도는 원하는 만큼 주겠네.”
기사에게 중요한 건 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것처럼 빛나는 근사한 검이 필요하기는 했다.
써드빌의 소금 냄새가 나는 언덕을 말이 달려갈 즈음에는 해가 사선에 걸렸다. 누런빛이 수풀과 흙길을 덥혔다. 두사람은 익숙한 곳을 지나치며 눈부신 석양 앞에서 여러 번 눈을 깜빡였다.
오즈월드는 이미 메이지의 허리춤에 달리게 될 새 검에 대한 모습을 눈으로 보듯 상상할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이 검집에서 소리 없이 꺼내졌을 때, 부드러워 보일 정도로 매끄러운 도신과 그 날을 타고 흐르는 불꽃 같은 석양을, 얼굴의 반쪽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투명함을, 닿으면 뜨거울 것 같지만 사실은 서늘할 그 예사로움을.
그 검은 오래 메이지의 곁을 지키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건 아직 대장장이의 망치에서 태어나기 직전의 망상, 그러나 예언처럼 확실한 사실이었다.